수필 및 평론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김 한 호 2019. 2. 17. 11:25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김 한 호

 

아름다운 숲과 백사장으로 둘러싸인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은 보이지 않고 방문객들만 서성거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소록도 병원은 천형(天刑)의 문둥병 환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조용한 공원 같았다.

 

해와 하늘빛이 /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어릴 때 고향 친구를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해와 하늘을 보며 문둥이는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늘이 이런 몹쓸 병을 주었단 말인가? 문둥이는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으리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었을까?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문둥병에 걸린 친구 생각에 차마 소록도를 갈 수가 없었다. 아마 그가 죽지 않았다면 소록도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록도를 찾아간 그 날도 그 친구를 만날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곤 했다.

소록도 병원을 둘러보고 한센인들의 유적지를 보면서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렇게까지 했는가 하는 죄의식마저 들었다. 한센인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도록 정관수술을 했던 감금실과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음침한 시멘트 건물 구석에서 비명으로 죽어간 한센인들이 귀신으로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할 것만 같았다.

한센병 환자들은 문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굴욕과 수모를 당하며 비참한 생활을 했다. 일제시대 때는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혹독한 강제노역으로 수많은 한센인들이 죽어갔다. 일본인들의 매질과 고문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바다를 헤엄쳐 육지로 건너가다 익사하기도 했다. 심지어 비인간적인 학대를 참지 못한 젊은이가 일본인 병원장을 살해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문둥이도 많았다. 동냥을 다니는 눈썹이 빠지고 얼굴이 일그러진 문둥이를 만나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기도 했다. 어른들은 문둥이가 애기를 잡아먹는다고 했고, 집에 불을 지른다고 하면서 문둥이를 보면 쫒아냈다. 보릿고개 때는 굶어 죽거나 추운 겨울에 다리 밑에서 얼어 죽은 문둥이도 많았다.

그런데 함께 놀던 친구가 문둥병에 걸렸다. 그 친구는 우리들과 친하게 지낸 착한 아이였는데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문둥병에 걸린 아이를 산 채로 산에 파묻으려는 것을 어머니가 외딴 오두막집에 숨겨두었다. 외딴집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때면 어머니는 개밥을 준다고 하면서 몰래 밥을 가져다주었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자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데, 아이는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듯 서러운 울음을 울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어떤 문둥이가 소록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어릴 때 어깨동무를 하던 그 친구를 문둥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소록도로 갔는지 모른다. 문둥이라고 천대받던 한하운 시인도 찌그러진 얼굴에 뭉그러진 손발, 고름 냄새나는 몸을 절름거리며 소록도를 찾아갔다. 그의 <전라도길>이라는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중략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전설 속에 하얀 아기사슴이 산다는 아름다운 소록도에 1916년에 나병환자 병원을 설립했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하여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더러는 나환자 정착촌에 모여 그들만의 삶을 사는 한센인도 있었지만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지금은 의술이 발달하여 완치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죽음의 병이었다. 그런 무서운 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곳에서 43년간이나 맨손으로 치료를 했던 천사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십여 년 전에 칠십 늙은 몸이 되자 몰래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전설 같은 그녀들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소록도를 떠나려니, 붉은 동백꽃이 서럽게 이승을 떠난 한센인들처럼 처연하게 땅에 떨어져 있었다.

 

ㆍ『한국수필(1994) 수필, 문학춘추(2001) 평론 등단

문학박사, 전 고등학교 교장, 김소월문학회 부회장,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저서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2018, 범우사) 7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올해의 작품상(광주문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