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산수유꽃 피는 사연

김 한 호 2019. 4. 30. 15:24

산수유꽃 피는 사연

김 한 호

 

빨간 열매 옆에 노랗게 핀 산수유꽃은 마치 산골 처녀 같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떨어지면 꽃이 핀다. 그러나 산수유 나무는 차마 열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수줍은 듯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꽃샘추위 속에 피는 산수유꽃은 화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럽게 보인다.

올해도 섬진강 다리를 건너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을 찾아갔다. 지난해에는 축제 다음날 다녀갔는데, 올해도 축제 다음날 멀리 사는 친구가 산수유 마을을 가보고 싶다고 하여 또 찾아갔다. 산수유꽃은 주인이 떠난 빈집에도, 아이들이 없는 개울가에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산수유 나무는 천년 전에 중국 산동성에 살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온 나무라고 한다. 산수유 나무는 꽃도 아름답지만 빨간 열매는 신령스러운 약재로 민간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산수유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구례 산동 마을에서는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 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산수유 마을에는 슬픈 사연을 지닌 <산동애가>가 남아 있다. <산동애가>는 구례군 산동면 상관마을에 사는 백부전(본명 순례)이라는 처녀가 큰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가고, 작은 오빠는 여순사건으로 처형당하고, 셋째 오빠마저도 빨치산에게 부역한 혐의로 잡혀가게 되자, 대를 이어야 할 오빠 대신 끌려가면서 구슬프게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로

까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 절며

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 하략

 

1948년 여순사건 때, 14연대 반란군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다. 평화롭던 산골마을에 들이닥친 빨치산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부역을 강요하고 식량을 약탈하다 순응하지 않으면 무참히 죽였다. 그 중에는 무고한 젊은이들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비참한 죽임을 당하거나 빨치산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는 산골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두기도 했다.

그런데 국군과 경찰 토벌대들이 산골마을에 들어와 빨치산들에게 부역한 산골마을 사람들을 처형했다. 그러자 산골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산수유 나무를 심어두고 마을을 떠났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 화전민들이 떠나가고 없지만 그들이 살다간 빈 집터에는 빨치산들의 만행을 지켜 본 산수유 나무가 남아 있다. 그 나무들은 같은 민족끼리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른 봄 지리산 자락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면 산수유 나무에는 샛노랗게 질린 그들의 넋처럼 샛노란 꽃이 피어난다. 산수유 마을에서 벌어진 민족의 비극도 어느덧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남북한이 갈린 데다 남한에서는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열리며 이념의 대립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산수유꽃이 필 때면, 해마다 구례군에서는 산수유 마을 사람들의 슬픈 사연을 잊은 채 상춘객들을 위한 꽃 축제를 한다. 이제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산수유꽃 피는 사연을 스토리텔링으로 형상화하여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산수유꽃 축제가 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리산 자락에 화려하게 핀 산수유꽃처럼 우리들 마음속에도 화합과 평화의 꽃이 활짝 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