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존재의 흔적

김 한 호 2021. 8. 6. 10:10

존재의 흔적

 

김 한 호

 

지난해 슬픈 별리가 있었다. 가까운 친척, 은사님, 직장 동료, 친구의 연이은 죽음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다정다감하게 지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작은 파도가 모여 큰 파도가 되듯이 슬픔은 상실감으로 이어져 며칠 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더구나 고인이 생전에 베풀었던 은덕과 지난 세월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69,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 중에 5층 건물이 무너져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의 이웃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별리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별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별리는 죽음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헤어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남이 있으면 떠남이 있듯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픈 별리이다. 그러므로 죽음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자기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은 잠재의식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죽음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죽은 후에는 이 세상에 살다간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 흔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업적이나 은덕으로 그 사람의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존재라는 것도 낙타가 사막을 지나가고 나면 모래바람에 발자국이 지워지듯이,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명예나 재산은 이미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죽음을 망각한 채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히 생존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왕이었던 만사 무사(1280~1337)였다.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최고의 부자 왕이었지만 그가 통치했던 업적이나 은덕은 높이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덕을 베풀었던 고인의 죽음을 통해서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다. 이제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 나의 삶에서 앞으로 나의 여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어떤 존재로 흔적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말이다.

 

누에는 10일 동안 살기 위해 창자에서 실을 뽑아 비단 집을 짓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지은 집일지라도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죽을 때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출세와 부귀를 위해 벌새처럼 바쁘게 살아간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벌새는 5~22크기의 2~20에 불과한 작고 예쁜 새인데, 꿀을 빨아먹기 위해 초당 50~80번의 날갯짓을 하며 분당 600회의 맥박이 뛴다. 우리 인간도 숨을 쉬기 위해서는 지구의 두 바퀴가 넘는 10나 되는 허파의 공기 통로를 거쳐야 한다. 또한 우리 몸은 분당 70회의 맥박이 뛰며, 심장의 피가 46초에 몸을 한 바퀴 도는 혈관이 112나 된다.

 

이러한 몸으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하지만 결국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베풀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 강물을 받아들여 사해로 흘러 보낸다. 그러나 사해는 받은 물을 가둬두기 때문에 물이 짜서 생물이 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재산을 모으는 욕심보다는 가진 재산과 은덕을 남에게 베푸는 선행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가는 실존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6200번의 생각을 한다. 그 많은 생각 중에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선물처럼 다가오는 행운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죽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서로 돕고 베풀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자신의 아름다운 존재의 흔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