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수필문학』 2024년 4월호(통권 381호)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 마음의 꽃 >
김 한 호
마음을 수양하여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나선다. 천연기념물 매화는 오죽헌의 율곡매, 화엄사의 백매, 선암사의 선암매가 있지만 유일하게 홍매화인 고불매(古佛梅)를 더 좋아한다.
올해도 매화 향기가 그리워 고불매를 보러 대한 8경의 하나인 백학봉 아래 백양사를 찾아갔다. 눈 속에 붉게 핀 고불매는 파르라니 머리 깎고 염불하는 여승처럼 가슴이 시리도록 처연하기만 했다. 고향의 탱자나무집 누나가 집이 가난하여 식모살이를 마다하고 여승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성 백양사에 갈 때마다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인 천진암을 찾아간다. 천진암은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고즈넉한 암자이다. 그 절에는 500년 된 탱자나무가 있고, 고불매처럼 고운 여승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비구니 스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머리 깎고 중이 되려는 여인이 없었던가 보다.
빈 집 같이 조용한 천진암에는 탱자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우리를 맞이했다. 500년 된 탱자나무를 보면서 탱자 울타리도 아닌 한 그루가 어찌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잘리지 않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더구나 다른 사찰에도 없는 탱자나무가 비구니들이 도를 닦는 이 암자에만 있다는 것은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승려가 된 사연이 저마다 있겠지만 무슨 까닭으로 가시 많은 탱자나무가 이곳에서 비구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녀들은 가시에 찔린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불도에 정진하여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음의 꽃을 피웠으리라.
인적이 없는 조용한 산사에서 500년 전 조선시대 연산군 때 싹이 터서 자란 탱자나무를 상상하다보니, 불현듯 어린 시절 고향의 탱자나무가 떠오른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돌담이나 울타리가 많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호랑나비가 날아다녔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탱자나무 잎과 가시를 먹고 자기 허물마저 먹어야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느 날 호랑나비를 잡다가 손에 탱자나무 가시가 박혔다. 가시 박힌 자리가 성이 나서 빨갛게 붓고 곪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장미나 찔레, 아카시나무에는 자기를 지키는 가시를 가지고 있다. 가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산다.
그런데 어느 날 탱자나무 하얀 꽃잎이 가시에 찔려 찢어져 있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다가 자기 가시에 쓸렸으리라.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가 때로는 스스로를 찌르기도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마 천진암의 수도승들도 가시에 찔린 아픈 마음을 탱자나무 가시를 보면서 스스로를 수양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꽃잎을 찢어버린 가시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하거나 불우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격이나 신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한다. 또는 공부를 못하거나 재능이 없는 것이 가시가 되어, 그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시가 자기 스스로를 찌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에게 가시 돋힌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을 찔러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이다.
천진암을 떠나면서 노랗게 익은 탱자 하나를 주웠다. 탱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향기 나는 열매의 씨앗 속에는 아름다운 꽃이 있고, 날카로운 가시도 숨겨져 있었다. 그 탱자 속에는 가시와 허물을 먹은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 같은 탱자나무집 누님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씨앗은 인격의 높고 낮음에 따라 꽃이 되기도 하고, 가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가시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마음의 꽃을 피워야 한다.
나도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하여 마음의 꽃을 피워야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천연기념물 고불매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김한호
ㆍ문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ㆍ육군 대위 전역(ROTC 14기), 전 고등학교 교장(홍조 근정훈장)
ㆍ저서 :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외 10권, 『21세기 한국교육 희망을 말하다』(공저), 2021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최우수도서
ㆍ수상 : 대한민국문학대전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아시아서석문학상 대상, 한민족문화예술대전 대상(서울특별시장상)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수필】
대표작을 선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등단 30년 동안 11권의 책을 발간하고, 250여 편의 수필을 발표했는데 그중에서 한 편을 고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쓴 수필 중에서 대표작이 몇 편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대표작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내가 잘 썼다고 생각되는 작품, 평론가가 호평한 작품, 수필집 제목이 된 작품, 상을 받은 작품, 독자들이 많이 읽고 공감한 작품 등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작품은 위의 선정 기준에 중복되는 작품도 있다.
내가 잘 썼다고 생각되며 심사위원들이 호평한 작품은 1994년 「한국수필」에 등단한 <어두운 세월 저편의 소리>가 있다. 등단작 2편 중 <풀꽃 훈장>과 이 작품은 조경희, 서정범, 이철호 심사위원이 호평한 작품이다.
수필집 표제작으로는 <춤추는 꽃>,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비 오는 날의 행복>,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가 있다. 이 외에 선정할 만한 작품으로는 <돌연변이 아이들>, <하늘빛이 서러워>, <마음의 꽃>, <잡초가 된 민들레>, <영혼처럼 빛나는 별> 등이 있다.
대표작 후보 몇 편의 수필 중에 <마음의 꽃>을 대표작으로 선정했다. 왜냐하면 <마음의 꽃>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었고, 독자들도 책과 SNS를 통해 가장 많이 구독했다. 또한 ‘광주문학상’ 수상 작품집에도 이 수필을 추천했으며, ‘한민족문화예술대전에서 대상’으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수필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으로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남과 다른 안목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여 개성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또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마음의 꽃>은 고불매와 탱자나무를 소재로 하여 유려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으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인 ‘마음의 수양’을 잘 표현한 문학성이 뛰어난 수필이다. 특히 문장이 간결하고 명확하며 여승, 비구니, 중, 승려, 수도승과 같이 다양하고 적합한 어휘로 표현하고 있다.
이 수필에서 작가는 천연기념물 고불매를 보러 갔다가 여승이 된 고향의 탱자나무집 누님을 회상한다.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인 천진암에는 500년 된 탱자나무가 있었다. 천진암의 수도승들은 가시에 찔린 마음을 탱자나무 가시를 보면서 수양했을 것이다. 탱자 열매를 보면서 가시와 허물마저 먹은 호랑나비가 꽃 같은 탱자나무집 누님에게 날아가는 상상을 하고 있다.
이 수필은 고불매의 꽃과 탱자나무의 가시를 보고, ‘꽃’과 ‘가시’와 같은 ‘마음’을 형상화하여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하여 천연기념물 고불매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는 자신의 인생관에 대한 사색과 성찰, 나아가야할 마음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수필로 쓴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길이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에서 쓴 글이 2020년 7월 23일 「전남매일신문」에 발표한 <마음의 꽃>이다. 「전남매일신문」에 에세이 연재는 2018년부터 7년째 매달 에세이를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문예지’와 ‘신문’에 수필을 발표하고, 인터넷 「경제포커스」와 월간지 「교육과 사색」 등에 수시로 에세이를 게재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SNS로 유통되어 독자들이 서로 공유하여 읽고 있다. <마음의 꽃>을 카톡에 올렸더니 1000여 명 이상이 읽었다. 종이책 시대에서 전자책 시대로 변천함에 따라 ‘daum 디스토리’에 ‘김한호 블로그’를 2017년 2월에 개설하여 수필과 평론, 사진 등을 올렸더니 많은 독자들이 인터넷과 SNS에 퍼 나르고 있다.
작가로서 30여 년 동안 수필과 평론, 그 외에 많은 글을 쓰고 발표하면서 과연 내 글을 독자들이 얼마나 읽고 공감하는지 의문이었다. 작가가 된 이후 나는 좌우명을 “내가 하는 일이 자신도 훌륭해져야 하겠지만 세상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정했다. 내 글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마음의 꽃>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에게 전이되어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