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100번째 주례사

김 한 호 2017. 4. 25. 10:37

100번째 주례사

김 한 호

 

정년퇴직을 하고 무슨 일을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주례 부탁이 들어와 주례를 하게 되어 2년 만에 100번의 주례를 보게 되었다. 주례를 맡게 되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주례사인데 예식장에서는 5분 이내로 끝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주례 없이 혼례를 치루는 신랑신부들이 많아 주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돼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례를 보면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신랑신부가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례사를 한다. 그리고 신랑신부에게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당부하면, 신랑신부는 내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 잘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을 한다.

그런데 주례를 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의 주례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들어보면 유익한 말씀을 하는 주례도 있었지만 횡설수설하는 주례도 없지 않았다. 또한 좋은 주례사를 찾기 위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도 읽어보았으나 결혼을 하지 않은 스님의 주례사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100번의 주례를 보면서 몇 번씩이나 주례사를 바꾸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치고 또 고친 주례사가 스스로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더욱이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 신부나 아이가 있는 나이 많은 신랑신부에게는 그때마다 적절한 주례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100번째 주례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당부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하며,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사랑의 본질은 열정친밀감헌신적인 마음이다. 그러므로 항상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배려는 자기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정이 평화롭고 화목해진다고 했다.

둘째는, 서로 말을 조심하여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언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부부간에는 서로 말을 조심해야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부터 두 사람은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바라며, 부부가 서로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게 되고, 자녀들 앞에도 모범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라는 주례사를 했다.

나는 주례를 볼 때마다, 신랑신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하지 못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N포세대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은 이혼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 이혼자녀의 양육과 비행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례의 역할은 신랑신부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년퇴직을 한 후 주례를 보는 것이 무엇보다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랑신부가 많은 하객들 앞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의 행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