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랑이'에서 '은하수'로
내 이름을 말한다
‘한국 호랑이’에서 ‘은하수’로
김 한 호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말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제목이 좋아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으나 작가의 이름 때문에 유명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작가 중에는 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작가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 호까지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다.
예전에는 아명(兒名), 자(字), 호(號), 휘(諱), 시호(諡號) 등 부르는 이름이 많았다. 나도 어릴 때 이름은 ‘한주’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호적에 내 이름이 ‘한호(漢鎬)’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어려서 이름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더욱이 그 당시에는 6ㆍ25 전쟁 중이라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도 출생 신고를 늦게 하거나, 이름을 호적과 다르게 부르기도 했다.
이름 말고도 별명도 참 많았다. 가끔 나를 ‘한국 호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웃고 만다. 왜냐하면 나를 소개할 때, ‘한국 호랑이’라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호랑이는 ‘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이다. 1988년 섬 학교에 근무할 때 인근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친목행사를 했는데, 그때 “김씨 성을 가진 한국 호랑이 김한호입니다.”라고 내 이름을 소개한 것이 ‘한국 호랑이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그 당시 TV 연속극에 호랑이 선생님이 인기를 끌면서 학생들은 나를 무서운 선생님으로 여겼다. 그런데 학생부장을 하면서 공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태권도 3단, 합기도 2단이라고 하니까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광주항쟁으로 공수특전사 출신을 좋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부장 한국 호랑이 선생님은 조폭도 무서워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학교에 온 조폭들을 쫓아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 호랑이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장학사가 된 이후에는 ‘한국 호랑이’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가 되어 글을 쓰면서부터 내 이름이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명이인의 작가 이름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김○호’라는 이름이 많았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선생님과 학생의 이름 중에는 숫자와 같이, 영호, 일호, 한호, 두호, 세호 등이 있어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 중에는 한자로도 내 이름과 똑같은 친구가 있어 ‘키 큰 한호’, ‘키 작은 한호’로 불리면서 서로 불편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어떻게 소개를 할까 궁리하다 우연히 대학원에서 한문 공부를 하면서 ‘한호(은하수 漢, 은하수 鎬)’가 ‘은하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누님은 “아버지께서 작명가를 집에 모셔두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귀한 아들 이름을 얼마나 잘 지었겠느냐.”고 한 말이 기억났다.
은하수(銀河水)! 우리말로는 ‘미리내’이고, 한자로는 ‘용천(龍川)’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무리가 흐르는 강처럼 은은한 별빛이 쏟아지는 은하수! 얼마나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이름인가. 용(龍)띠 해에 태어나서 울지도 않고 까무라쳐 있던 아이를 살려내어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어머니께서 숱한 날들을 정화수 떠놓고 은하수를 바라보며 기원하셨던 영험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밤하늘에 영혼처럼 떠 있는 별을 볼 때면 또 다른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면서 은하수 흐르는 밤하늘의 별처럼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행복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면서 오늘도 은하수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