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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광장에서 우는 뻐꾸기

김 한 호 2018. 11. 15. 05:29

민주광장에서 우는 뻐꾸기

김 한 호

 

뻐꾸기가 울던 그 날은 폭염으로 열기가 식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밤에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33년간 장기집권한 훈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집회가 열렸다. 전국의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 500여 명은 캄보디아 총선일에 맞춰 민주화를 외치며 자국어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캄보디아 여성의 결혼식 주례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결혼이주여성들이 518 민주광장에서 캄보디아 민주화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가한 광경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

518 민주광장은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린 역사의 현장이다. 더구나 나는 518이 일어나기 이태 전에 계엄군이었던 공수특전사 장교로 근무했었다. 또한 518 당시 전방 부대에서 휴가를 나와 광주뿐만 아니라 목포, 순천에서도 시위 현장을 목격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인들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와트 사원을 세울 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나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독립 후에도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크메르 루즈군에 의해 100만 명이 학살당했다. 몇 년 전에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 킬링필드 때 학살당한 해골들을 쌓아놓은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공산독재정권 치하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을 위해 캄보디아 이주민들은 518 민주광장에서 뻐꾸기처럼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함성을 외쳤던 것이다.

뻐꾸기는 한자어로 포곡(布穀)’이라고 한다. 뻐꾸기가 포곡 포곡우는 까닭은 씨 뿌려라, 씨 뿌려라, 농부들에게 파종기가 되었으니 어서 씨를 뿌리라고 재촉하며 운다고 전해온다. 1908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의장청조 (依杖廳鳥)>에는 뻐꾸기를 복국(復國)’이라고 하며, ‘나라를 다시 찾자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울어댄다고 했다. 아마 전라도 농민들이 뻐꾸기 소리를 듣고 의병으로 봉기하여 싸우다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전라도 사람들은 국난을 당하면 목숨을 희생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나라를 지켰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었다(若無湖南 是無國家)”고 했다.

역사적으로 소외당하고 핍박받으며 살아온 전라도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집단 무의식의 민중정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변방지역에서 오랫동안 차별당하며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은 어느 지역보다도 민중의식이 강해 외침이나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렬했다. 이러한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정서가 마침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민중항쟁으로 되살아났던 것이다.

518 광주민중항쟁은 전라도 사람들이 불의에 저항한 여러 사건 중 역사적으로 계승된 일련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의 봉기, 부패한 사회에 대한 반기로서 동학농민운동,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광주학생독립운동, 그리고 민주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 중의 하나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용기 있는 사람들의 행동하는 양심이 마침내 위대한 역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비록 처음은 미약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의미 있는 역사가 된다.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이다. 불의와 외침에 저항한 시대, 숱한 시련과 역경을 극복한 세월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잘못된 역사는 후세에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일으킨 전라도 사람들처럼 캄보디아 출신의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들이 518 민주광장에서 2018728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촛불집회를 열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더욱이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촛불을 밝힌 것은 훗날 캄보디아가 민주화를 이루고 번영의 국가가 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한국의 도시와 농어촌에는 중국, 동남아, 몽골, 중동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농어촌에는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온 여성들이 시골 노총각들과 국제결혼을 하여 이 땅에 살고 있다. 이제는 단군의 자손인 배달민족이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다인종들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

더구나 농어촌에는 다문화 여성들이 낳은 혼혈아들이 우리의 고향을 지키게 되었다. 농어촌은 한국인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고향의 원형질이다. 그런데 한국의 미풍양속을 자기 나라의 풍습에 길들어진 다문화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오히려 명절이 되면 그들은 뻐꾸기처럼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지 않을는지 모를 일이다.

개망초꽃이 필 무렵이면 여름 철새인 뻐꾸기가 동남아에서 날아온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는 새이다.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둥지에 뻐꾸기가 몰래 알을 낳고 가버리면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알을 자기 알과 함께 부화시킨다. 그런데 뻐꾸기는 새끼가 다 자라면 새끼를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날아가버린다.

나그네새인 뻐꾸기가 여름철이면 날아오고, 외래식물인 개망초가 한국 땅에서 꽃을 피우고 살듯이, 한국인과 결혼한 다문화 여성이 한국문화에 적응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망초의 꽃말이 화해이듯이 화해하는 마음으로 외래종인 뻐꾸기와 개망초와 다문화 가족이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자기 나라에 가서도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1000년이 되는 2018,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캄보디아 이주민들의 촛불집회는 역사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공산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는 부모형제들이 어둠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하는 정의의 함성이기 때문이다. 그 메아리가 온 세계에 울려퍼져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의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