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 김한호 에세이

[문학마당]마음의 꽃 / 수필 - 김한호

김 한 호 2023. 4. 22. 15:47

마음을 수양하여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나선다. 천연기념물 매화는 오죽헌의 율곡매, 화엄사의 백매, 선암사의 선암매가 있지만 유일하게 홍매화인 고불매(古佛梅)를 더 좋아한다.

올해도 매화 향기가 그리워 고불매를 보러 대한 8경의 하나인 백학봉 아래 백양사를 찾아갔다. 눈 속에 붉게 핀 고불매는 파르라니 머리 깎고 염불하는 여승처럼 가슴이 시리도록 처연하기만 했다. 고향의 탱자나무집 누나가 집이 가난하여 식모살이를 마다하고 여승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성 백양사에 갈 때마다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인 천진암을 찾아간다. 천진암은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고즈넉한 암자이다. 그 절에는 500년 된 탱자나무가 있고, 고불매처럼 고운 여승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비구니 스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머리 깎고 중이 되려는 여인이 없었던가 보다.

빈 집 같이 조용한 천진암에는 탱자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우리를 맞이했다. 500년 된 탱자나무를 보면서 탱자 울타리도 아닌 한 그루가 어찌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잘리지 않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더구나 다른 사찰에도 없는 탱자나무가 비구니들이 도를 닦는 이 암자에만 있다는 것은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승려가 된 사연이 저마다 있겠지만 무슨 까닭으로 가시 많은 탱자나무가 이곳에서 비구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녀들은 가시에 찔린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불도에 정진하여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음의 꽃을 피웠으리라.

인적이 없는 조용한 산사에서 500년 전 조선시대 연산군 때 싹이 터서 자란 탱자나무를 상상하다보니, 불현듯 어린 시절 고향의 탱자나무가 떠오른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돌담이나 울타리가 많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호랑나비가 날아다녔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탱자나무 잎과 가시를 먹고 자기 허물마저 먹어야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느 날 호랑나비를 잡다가 손에 탱자나무 가시가 박혔다. 가시 박힌 자리가 성이 나서 빨갛게 붓고 곪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장미나 찔레, 아카시나무에는 자기를 지키는 가시를 가지고 있다. 가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산다.

그런데 어느 날 탱자나무 하얀 꽃잎이 가시에 찔려 찢어져 있었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다가 자기 가시에 쓸렸으리라.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가 때로는 스스로를 찌르기도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마 천진암의 수도승들도 가시에 찔린 아픈 마음을 탱자나무 가시를 보면서 스스로를 수양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시에 찢긴 꽃잎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하거나 불우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격이나 신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한다. 또는 공부를 못하거나 재능이 없는 것이 가시가 되어, 그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시가 자기 스스로를 찌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에게 가시 돋힌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을 찔러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이다.

천진암을 떠나면서 노랗게 익은 탱자 하나를 주웠다. 탱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향기 나는 열매의 씨앗 속에는 아름다운 꽃이 있고, 날카로운 가시도 숨겨져 있었다. 그 탱자 속에는 가시와 허물을 먹은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 같은 탱자나무집 누님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씨앗은 인격의 높고 낮음에 따라 꽃이 되기도 하고, 가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가시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마음의 꽃을 피워야 한다.

나도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수양하여 마음의 꽃을 피워야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천연기념물 고불매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김한호 약력>
▲‘한국수필’ 수필, ‘문학춘추’ 평론 등단,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외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 외 10권
▲문학박사, 전 고등학교 교장

-평설-
김한호 님의 수필 ‘마음의 꽃’에서의 서술자는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 나선다. 대한 8경의 하나인 백학봉 아래 백양사, 거기 피어 있는 고불매.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도록 처연하다. 이번에는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인 천진암, 거기 서 있는 500년 된 탱자나무에 눈길을 보낸다. 거기서 마음의 꽃에 대한 사색을 펼친다. 가시에 찔린 상흔을 달래기 위해 불도에 정진하여 피워낸 아름답고 향그러운 마음의 꽃. 또 가시에 찢긴 꽃잎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가시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음의 꽃, 그 꽃을 피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 속에서 문학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장르는 수필이 적격일 것이다. 수필은 허구의 세계가 아닌 체험의 세계를 소환해 현재 관점에서 재해석한 가치를 풀어놓는다. 그러기에 작가와 독자가 함께 아픔을 공감하며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이 공명을 일으킨다. 수필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21세기에 들어 더욱 뚜렷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수필은 빛을 발하고 있다. 거기에 구성의 묘미가 좋고 문학적인 미감까지 더했으니 금상첨화다. 주변의 사물을 밑거름으로 해, 자연스레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사색, 그리고 나아가야 할 마음의 방향까지 이끌어내는 솜씨가 아주 세련됐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배려해 놓은 복선들도 아주 섬세해, 아름다운 문장과 더불어 수필의 매력에 푹 빠지도록 사색의 터를 만들어 놓고 있다.

http://www.kjdaily.com/1650278256572246202

 

[문학마당]마음의 꽃 / 수필 - 김한호

마음을 수양하여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나선다. 천연기념물 매화는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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