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123

초록빛 추억

『수필문학』 2024년 11월호(통권 388)  초록빛 추억 김 한 호 추억은 그리움이다. 그립다는 것은 지난날이 아름답고 행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스럽던 그 시절이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기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되는 것만 같다. 고희를 지나니 기억 저편의 일들이 그리워 반추하듯 지난 일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군대생활을 할 때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지는 군사우편이라 그 당시 일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공수특전사에서의 일들을 회상해보고 싶었다.   그해 여름은 비가 내리지 않아 초목이 타들어가고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ROTC 소위로 임관한 나는..

수필 및 평론 2024.11.15

징검다리 건너며

징검다리 건너며 김 한 호 오늘도 시냇가를 산책하면서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가 없으면 시냇물을 건너지 못하는데 징검다리를 놓아준 고마운 사람들을 잊고 살아왔다. 우리 주위에는 징검다리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는 부모 형제, 훌륭한 은사님, 좋은 친구들, 마음씨 고운 사람들은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징검다리와 같이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징검다리나 디딤돌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징검다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게 이어주며, 디딤돌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징검다리나 디딤돌 같은 ..

수필 및 평론 2024.10.12

아파트 개구리 소리

「전남매일신문」 2024.8.29(목) 게재 아파트 개구리 소리 김 한 호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아파트 작은 연못에 개구리가 살고 있다. 여름철이면 개구리 소리가 합창인 양 들려온다. 그런데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개구리 떼창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개구리를 모두 없애버리자고 한다. 그래서 목청이 큰 개구리를 잡아다 광주천에 버렸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개구리 소리가 자연의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하면서 없애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조용한 밤에 개구리 소리를 녹음하여 친구들 카톡에 올렸더니 오랜만에 들어보는 농촌의 정겨운 소리라고 다들 좋아한다. 자연의 소리는 아름답다. 자연에서 들리는 새 소리, 풀벌레 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자연 생태계 최초의 소리는 귀뚜라미..

수필 및 평론 2024.08.29

사랑하는 마음

김 한 호(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봄 햇살이 다사로운 날, 서울에 사는 두 손녀가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를 보더니 춤을 추듯이 달려와 할머니에게 부둥켜 안긴다. 뒤따라온 어멈의 웃음이 봄꽃처럼 화사하다. 곁에서 바라보는 나도 밝고 따뜻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범은 자기 가족을 “아름다운 알찬 봄”이라고 부른다. 한글로 지은 아들 이름 ‘알찬’과 봄에 태어난 여섯 살배기 ‘봄’이와 세 살배기 ‘아름’이를 합쳐 부른 이름이다. 내가 ‘다운’이 아들이 있어야 가족 이름이 완성된다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행복한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평화롭다. 며칠 전 봄이가 어린이집에서 야외놀이를 갔다가 팔이 부러졌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 아들은 자기도 봄..

수필 및 평론 2024.06.05

불멍때리기

불멍때리기 김 한 호 어두운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때리기를 함께 했다. 불멍은 ‘불을 보며 멍때린다’는 준말로 불타는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것이다. 친구는 불 같은 성질을 고치기 위해 장작불을 태우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아무 잡념 없이 쳐다보며 멍때리기를 한다고 했다.  불멍때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불타던 장작이 무너지면서 불똥이 내 쪽으로 튀겼다. 시뻘건 잉걸불을 보자 어린 시절 산불이 나서 놀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언덕배기에서 동무들과 쥐불놀이를 하는데 들불이 번져 산자락에 옮겨 붙었다. 대낮에 불은 연기도 없이 마른 검불을 태우며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녔다. 불길이 산지기 초가집에 다가가자 불을 보고 놀란 산지기가 허겁지겁 물을 뿌리며 불을 껐다. 산지기는 불 같이 화를 냈다..

수필 및 평론 2024.05.11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수필문학』 2024년 4월호(통권 381호)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김 한 호 마음을 수양하여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나선다. 천연기념물 매화는 오죽헌의 율곡매, 화엄사의 백매, 선암사의 선암매가 있지만 유일하게 홍매화인 고불매(古佛梅)를 더 좋아한다. 올해도 매화 향기가 그리워 고불매를 보러 대한 8경의 하나인 백학봉 아래 백양사를 찾아갔다. 눈 속에 붉게 핀 고불매는 파르라니 머리 깎고 염불하는 여승처럼 가슴이 시리도록 처연하기만 했다. 고향의 탱자나무집 누나가 집이 가난하여 식모살이를 마다하고 여승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성 백양사에 갈 때마다 비구니들의 ..

수필 및 평론 2024.04.17

사랑과 전쟁

사랑과 전쟁 김 한 호 유별난 역사는 수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사랑 때문에 전쟁을 했던 영웅들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트로이 목마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사랑을 나눴던 클레오파트라가 활약했던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기회를 놓쳐 수십 년이 흐른 지난 3월말 그리스, 튀르키예를 11박 13일의 여정으로 다녀왔다. 트로이 목마는 기원전 1194~1184년에 일어난 전쟁을 400년 후에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드」를 써서 알려진 전설이다.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음이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유적에서 1871년 발굴되어 그 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트로이 전쟁은 스파르타 왕의 메넬라오스 왕비 헬레나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

수필 및 평론 2024.04.10

부자가 아니더라도

김 한 호(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부자는 돈에 궁핍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어 가난한 사람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소득과 행복지수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인 부자 수는 45만 6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0.89%이며 70.6%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한국의 부자는 부모로부터 증여나 상속을 받은 사람이 60%이며, 그 외 사업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자신의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11.3%에 불과하다고 하니, 일개미 같은 서민이 부자가 되기는 복권 ..

수필 및 평론 2024.03.15

돌탑의 허상

돌탑의 허상 김 한 호 어떤 등산객이 산행을 하다가 갑자기 똥이 마려워 길가에 똥을 쌌다.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보기에 안 좋아 주위에 돌을 몇 개 모아 덮어 놓았다. 그 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돌 위에다 돌을 얹어 돌무더기가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돌무더기 둘레에 큰 돌로 받침돌을 세우고 돌탑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돌탑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런데 돌탑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돌탑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한 채 자기의 소원을 빌었다. 돌탑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앞사람을 따라 하고 있었다. 똥이 들어있는 똥탑인 줄도 모르고…. 이 이야기는 실화라고 하지만 내가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 얼마든..

수필 및 평론 2024.03.10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마음의 꽃 김 한 호 마음을 수양하여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연기념물 매화가 있는 절을 찾아나선다. 천연기념물 매화는 오죽헌의 율곡매, 화엄사의 백매, 선암사의 선암매가 있지만 유일하게 홍매화인 고불매(古佛梅)를 더 좋아한다. 올해도 매화 향기가 그리워 고불매를 보러 대한 8경의 하나인 백학봉 아래 백양사를 찾아갔다. 눈 속에 붉게 핀 고불매는 파르라니 머리 깎고 염불하는 여승처럼 가슴이 시리도록 처연하기만 했다. 고향의 탱자나무집 누나가 집이 가난하여 식모살이를 마다하고 여승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성 백양사에 갈 때마다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인 천진암을 찾아간다. 천진암은 석가모니 진신..

수필 및 평론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