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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 속에 핀 꽃

김 한 호 2018. 11. 15. 05:02

철모 속에 핀 꽃

김 한 호

 

하얀 꽃 한 송이가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피어있었다. 그 꽃은 반쯤 뒤집힌 채 흙 속에 묻혀 있는 철모 속에 피어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꽃 같아서 저만치 쳐다보니 녹슬고 깨진 철모 밑에는 유골이 묻혀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625전쟁 때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와 가까이 있었다. 부대 주변에는 미확인 지뢰밭이 있어 이름 모를 유해들이 들꽃처럼 피어 있었다.

비무장지대 아래 민통선 마을에는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살고 있었다. 민통선에서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초소 앞에 와서 휴전선 너머 멀리 보이는 북녘마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저곳이 예전에 자기가 살던 고향마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게 끌려간 동생을 찾기 위해 국군에 지원하여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헤어진 부모형제를 찾기 위해 고향 가까운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죽기 전에 동생을 만나고 싶고, 죽었다면 유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남북한 정상이 평양에서 비무장지대에 있는 625전쟁 때 전사자의 유해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은 백마고지와 가까이 있는 철원의 화살머리 고지를 시범적으로 발굴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 유해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수통에는 30여 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있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106일부터 열흘 동안 해발 395m 고지를 뺏기 위해 한국군 2만여 병력과 중공군 44천여 명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스물 네 번이나 뺐고 빼앗기는 전투 중에 한국군 3400여 명과 중공군 14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투였다. 백마고지는 산등성이에 무수히 터진 포탄으로 흙이 하얗게 변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복무 시절에 가보았던 백마고지를 보고 싶었다. 전역 4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030, ROTC 14기 동기와 부부 140여 명이 백마고지 유적지를 찾아갔다. 백마고지를 바라보면서 국토방위를 위해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추억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실향민 할아버지는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남과 북에는 625전쟁으로 부모형제와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많이 있다. 1985년 이후 스물 한 번이나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이 있었지만 아직도 수백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은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으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는 혈육의 정마저 끊어놓고, 세월은 꽃다운 청춘을 백발노인으로 만들었으니, 이 한 맺힌 이산가족의 눈물을 누가 알겠는가?

 

살아있는 이산가족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625전쟁 때 전사한 비무장지대 미확인 지뢰밭에 묻힌 이름 모를 유해는 어떻게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령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부모형제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 DNA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철모 속에 피고 지는 들꽃처럼 무심한 세월만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625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625전쟁 중에 태어난 나는, 전쟁의 쓰라린 아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향마을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빨갱이들에게 학살을 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패잔병들은 백운산에 숨어 게릴라전을 벌이며 관청을 공격하고 민가를 불태웠다. 빨치산들은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식량을 약탈하고, 젊은이들을 끌고가 빨치산이 되기를 강요하다 순응하지 않으면 죽였다. 산골마을에 살던 친척 할머니는 외아들이 빨치산에게 잡혀갔다. 할머니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자식이 돌아오기를 눈 시리도록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다.

 

전쟁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채 한 많은 세월은 깊고 푸른 강물처럼 흘러갔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도 어느덧 68년이 흘렀다. 올해는 남북한 및 미국의 정상들이 만나 북한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남북한 정상이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백두산 천지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평화를 기원했으리라.

 

625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염원하는 것은 남북통일이 되어 헤어진 부모형제를 다시 만나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 이산가족 찾기와 무명용사들의 유해 발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녹슬고 깨진 철모 속에 핀 이름 모를 꽃이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조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휴전선 비무장지대 풀숲에 잠자는 이름 모를 용사들은 남과 북에 사는 우리들의 잊힌 혈육이다. 지금도 그들의 부모님은 전쟁터에 나간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라고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북한에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고, 625전쟁으로 전사한 유해들이 부모형제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머지않아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이루고 번영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은원(恩怨)일랑 잊어버리고 서로 화합하는 한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철모 속에 핀 하얀 꽃이 하늘에 별이 되어 영원히 지켜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