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광주 새벽시장>
김 한 호
광주에는 전통시장이 많이 있다. 광주에서 가장 큰 양동시장을 비롯하여 나주 쪽에 송정리시장이 있고, 담양 쪽에는 말바우시장이 있으며, 화순 쪽으로 남광주시장이 있다. 남광주 새벽시장은 화순, 보성, 고흥 방면에서 새벽 일찍 실어온 농수산물을 아침에만 잠깐 파는 도깨비시장이다.
학동 무등산아이파크로 이사 와서 아내와 함께 가끔 남광주 새벽시장을 간다. 새벽시장에는 장사꾼이 가져온 농수산물이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시골에서 할머니가 손수 가꾼 채소나 아낙네가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을 팔기도 한다. 할머니 중에는 돌아가신 어머니 같이 정겨운 분을 만날 때면 넉넉하고 인정 많던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은 객지에 사는 사람들에겐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는 전통문화와 농경생활에 대한 그리움. 고향을 떠나왔으면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고향 마을과 정겨운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살아왔던 세월들이 빛바랜 사진처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기억들 중의 하나가 시골 5일장이다. 장터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서 그동안 몰랐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밌는 일은 시장 구경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에는 물건을 팔고 흥정하느라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마치 잔칫집 같이 시끌벅적하다.
더구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소리들, 약장사의 흘러간 옛 노래,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 동동구리무 장구소리, 풀무를 돌리다 갑자기 뻥 튀기는 소리는 그 시절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추억의 소리들이다. 게다가 거지들이 몰려다니며 수저로 깡통을 두드리고 품바춤을 추면서 각설이 타령을 토악질하듯 쏟아내는 소리는 민초들의 서러운 삶의 모습이다.
남광주시장은 5일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추억거리가 없었을 것이다. 남광주시장은 철도역이 생기고 뒤늦게 장터가 형성되었다. 광주는 1913년 10월에 나주 방면에서 오는 송정리 기차역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 당시 송정리는 황룡강을 건너는 나루터였는데, 철도가 들어오면서 지금의 송정매일시장이 아닌 곳에 송정리 장터가 열렸다.
남광주역은 1930년 12월에 광주와 여수를 잇는 160㎞ ‘광려선’(지금의 경전선)이 개통되면서 생겼다. 역 이름을 ‘신광주역’이라고 했다가 1938년부터 남광주역으로 고쳐 불렀다. 이 철도는 전라도에서 생산된 쌀을 여수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1960~70년대 남광주역은 화순탄광에서 싣고 온 무연탄을 연탄공장에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광주역이 2000년에 철거되어 주차장이 되면서 지금은 역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남광주에는 1955년에 처음으로 학동시장이 생겼다. 1970년대부터 남광주역에 새벽열차가 도착하면 역전광장에 장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1975년에 남광주시장이 공식 개설되면서 1994년에 학동시장이 폐업을 하게 되었다. 남광주시장은 수산물 전문시장으로 현재 점포 300여 개, 노점 50여 개가 있으며, 3년 전부터 남광주 밤기차 야시장이 생겨 야식을 판매했으나 지금은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대개 전통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진국 시장처럼 진화한다. 그러나 남광주시장 주변에는 무허가 노점상들이 많이 있으며, 인도에는 불법 적치물이 쌓여 있고, 도로에는 불법주차 차량이 늘쌍 있다. 게다가 재래시장은 전염병에 취약한 데, 전남대병원 환자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로 시장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시장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풍물도 바뀌기 마련이다. 지금의 남광주시장은 시골에서 올라온 농수산물과 외국에서 수입한 농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비록 남광주 새벽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예전과 다르더라도, 농촌에서 가꾼 남새를 팔던 엄니 같은 할매의 인정과 고향의 정취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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