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5월의 꽃넋

김 한 호 2020. 3. 16. 10:44

5월의 꽃넋

김 한 호

 

5월이 오면 붉은 황톳빛 산야에 찔레꽃이 핀다. 하얀 꽃잎에 진한 향기를 내뿜는 찔레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으로 한 맺힌 사연의 꽃 전설을 가지고 있다.

찔레는 고려시대에 몽고족에게 공녀로 끌려간 고려 소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낯선 이국땅에서 종살이를 하는 동안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가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오랑캐 나라를 탈출하여 부모형제를 찾아 고국산천을 헤매고 다니다 지쳐 쓰러져 죽었다. 이렇게 죽은 찔레의 넋이 꽃이 되었다고 한다. 찔레의 한 서린 마음은 하얀 꽃잎으로 피어났고, 핏빛 눈물은 빨간 열매가 되었으며, 애달픈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향기로 남았다.

5월 그날이 오면, 산자락 가시덤불 속에서도 찔레꽃은 피어나고, 한 맺힌 이의 가슴속에서도 찔레의 꽃넋은 되살아난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척박한 땅에서 꽃을 피우는 찔레는 불의에 항거한 5월 영령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 꽃은 소복 입은 여인처럼 서럽고, 꽃향기는 민주화의 함성처럼 온 산하에 흩날린다.

19805, 군사쿠데타에 항거한 수많은 광주시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다 폭도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시위 군중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그 소용돌이로 꽃다운 청춘들이 꽃잎처럼 쓰러져 꽃상여에 실려 망월동 묘지로 갔다.

그 후에도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한 대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은 시내 곳곳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었다. 도청 앞 광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는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 불꽃으로 자욱했다.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던 피 끓는 젊은이들이 분신자살을 하고, 산 자들은 행방불명이 된 부모형제를 찾아 헤매고 다니며 ‘5월의 노래를 불렀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붉은 너의 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의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어느덧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과거를 잊게 한다. 5월 그날의 쓰라린 아픔도 이제는 역사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더욱이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5월의 이야기를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찔레의 꽃말이 양심의 가책이듯, 찔레꽃이 피는 계절이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1980518, 나는 휴전선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휴가를 받아 처가가 있는 광주에 왔다가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광주뿐만 아니라 목포, 순천에서도 시위 현장을 구경했다. 그 후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원대복귀 명령으로 전방부대로 돌아왔다.

전방부대에 근무하기 이태 전에는 계엄군으로 파견된 공수특전사 장교로 근무했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이 군사쿠데타에 휘말리어 무고한 광주시민들과 피를 흘리는 전투를 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시민들과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만약 내가 아직도 그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더라면 고향 사람들과 총부리를 겨누며 싸웠을 것이 아닌가?

그 무렵 전방부대에서 정훈장교였던 나는 군사정권의 지시에 따라 518을 불순분자들의 폭동이라고 병사들에게 교육시켰다. 그 이듬해 제대를 하여 교직에 근무하면서도 518에 대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대학생들의 시위 현장을 보면서도 방관자로 구경만 했다.

군사정권이 바뀌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잘못된 역사인식을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웠다. 그해 처음으로 망월동 묘지를 찾아가 5월 영령들에게 역사의 죄인으로서 참회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인들 가슴 아픈 기억이 없겠는가! 하지만 5월 그때만큼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역사도 없으리라. 망월동 묘지에 묻힌 희생자나 동작동 묘지에 묻힌 군인이나 그들 모두는 우리들의 형제들이 아닌가? 더구나 굴욕의 세월을 살아온 희생자 유가족들의 슬픔을 누가 알겠는가? 또한 광주에 파견되어 살상을 자행한 군인들이 양심선언을 하지 못하고 세월의 뒤안길에서 침묵으로 살아온 삶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40년의 세월이 흐른 이제는, 5월 그날의 해묵은 감정을 화해하고용서할 수는 없을까?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눈물로 살아온 우리 겨레에겐 찔레 소녀처럼 부모형제를 잃은 한 맺힌 사연이 어찌 없을까마는, 찔레가 죽어서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나듯이 5월 그날의 쓰라린 역사를 승화시켜 민족 화해의 꽃을 피울 수는 없을까?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이 되던 해에 광주시에서는 518 추모 꽃길사업으로 망월동 묘지 주변에 하얀 찔레꽃을 심었다. 그 후 2002년에는 ‘518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도로변에 하얗게 꽃이 피는 이팝나무를 심었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올해, 518 국립묘지 가는 길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꽃과 찔레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흰 꽃이 부활을 상징하듯, 하얗게 꽃 핀 망월 동산에 화해와 평화의 꽃넋이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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