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마을 사람들
김 한 호
학처럼 평화롭던 마을이 재개발사업으로 시끄럽다. 학동 3구역 재개발사업으로 ‘무등산아이파크’가 들어서자 투기꾼들이 몰려오고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이제는 4구역 재개발사업으로 학마을 사람들이 살던 집들이 허물어지면서 동네마저도 사라져버렸다. 마을의 역사가 소멸되고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학마을은 조선시대 때 홍림리라고 불렀다. 그 당시에는 화순 너릿재로 넘어가는 길이 천변을 따라 나 있었을 뿐 마을은 없었다. 홍림리는 광주천 상류 지역으로 하천 일대가 평지보다 낮아 홍수가 잦았으며, 개울이 여러 갈래로 흘러 학동시장이었던 지금의 ‘정도마트’ 자리에도 물레방아가 있었다.
1920년대부터 남광주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도시 빈민들이 광주천 하천부지에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데 일본 침략자들은 강제 노역과 감시를 위해 빈민들에게 갱생부락이라는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갱생부락에는 욱일승천기를 본떠 공동우물을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로 여덟 개의 골목이 있는 ‘학동 팔거리’가 있었다.
학동 팔거리 근처에는 ‘백화 마을’이 있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독립운동가 및 일본군에 징병ㆍ징용ㆍ성노예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김구 선생의 후원으로 백화마을을 조성했다. 백화마을은 1947년 겨울에 100가구 400여 명이 입주를 했다. 집들은 4평 크기로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며, 주거환경이 좋지 않아 1992년에 ‘백화아파트’를 지었다. 학동 팔거리는 2011년에 ‘학2마을 아파트’가 들어서고, 2015년에는 ‘광주백범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백화마을 근처에는 ‘뽕뽕 다리’라고 구멍이 뚫린 철판으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뽕뽕 다리가 철거되고 방림교 다리를 건설했는데, 그 다리 밑 하천 주변에는 넝마주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차별받고 소외된 세상에서 불쌍하게 살다가 5ㆍ18 민주화운동 때는 시위에 참가했지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전설에 의하면 학마을은 무등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전남대병원 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이 학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학 머리는 ‘학1마을 아파트 어린이공원’이라고 한다. 학마을에 사는 원주민들은 학동이 길지라서 언젠가는 부자 동네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소망처럼 학동 3구역이 재개발되어 2017년에 무등산아이파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제는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이 시작되는데,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부자 동네가 되었다. 하지만 재개발사업으로 주택이 있는 사람은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어 좋겠지만,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쫓겨나야만 했다. 게다가 분양권을 팔아버린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트에 입주하지도 못하고 정든 이웃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예로부터 집은 가족이 함께 사는 거주 공간이자 삶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 이상의 가족의 역사가 남아있는 삶의 보금자리이다. 그런데 이제 집은 거주뿐만 아니라 자산 가치가 있어야 한다. 개인주택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부터 집은 투자를 통한 경제적 이익 창출의 투기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집은 안락한 생활을 하는 거주 이전에 경제적으로 얼마큼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에 관심사가 되었다.
광주는 아파트 주거비율이 75%로 세종시 다음으로 아파트가 많은 도시이다. 도시에 주택이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여유 있고 인정 많던 이웃들의 인심도 변해가고 있다. 나 역시 아이파크 아파트에 이사 온 지 5년째가 되지만 이웃도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학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살던 동네도 사라지고 정든 이웃도 흩어져버렸다. 그런데 아파트 재개발로 부자로 살고 싶었던 학마을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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