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광장에서의 메아리
김 한 호
민주광장에서 냄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미얀마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미얀마인들과 ‘미얀마 광주연대’가 ‘딴봉띠’를 재현하며 외치는 함성이었다. 딴봉띠는 냄비를 두드리며 악귀를 쫓는 미얀마 풍습으로 “군사 독재 물러가라!”는 의미로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 5ㆍ18민주광장에서 미얀마인들과 광주 시민들이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미얀마는 2021년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아웅산 수치와 윈 민 대통령을 축출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평화적인 시위를 했다. 그러나 군부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자 시민들은 새총과 화살을 쏘거나 돌멩이나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군사 쿠데타에 항거하는 미얀마 양곤 시민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광주 시민들의 민주항쟁과 닮았다. 양곤 시민들도 처음에는 평화적인 시위를 했지만 군경이 어린이, 임산부를 가리지 않고 무참히 살상하는 광경을 보고, 시위대들이 무장 투쟁을 하면서 소수민족인 카렌족ㆍ카친족과 미얀마 군부는 내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몇 년 전에 태국ㆍ미얀마ㆍ라오스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태국 국경 근처에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살고 있었다. 카렌족의 여인들은 목에 굵은 링을 감은 채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목에 링을 감는 까닭은 남편이 사냥을 나간 뒤에 맹수한테 목을 물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카렌족은 맹수가 나타나면 냄비를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인간은 누구나 신변에 공격을 당하거나 위기의식을 느끼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공포를 느끼거나 불안하면 소리뿐만 아니라 물건을 두드려 경고를 한다. 그래서 새나 짐승을 쫒을 때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위협한다. 얼마 전에 산에서 멧돼지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도 여럿이서 함성을 지르고 물건을 두드려 쫒아버린 적이 있었다.
미얀마인들이 냄비를 두드리는 ‘딴봉띠’ 행사는 평화를 염원하는 미얀마인들의 본능적인 행위이다. 미얀마인들과 함께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냄비를 두드리는 딴봉띠 행사는 광주 시민들이 1980년 5월 광주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5ㆍ18때 광주 시민들이 궐기했던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은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곳에 모여 시위를 하는 열린 광장이다. 2018년 7월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33년간 장기집권한 훈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촛불집회를 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아직도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는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라윳 찬 오차 태국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군사정권과 왕권체제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로 경찰이 부상을 입고 시민들이 구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통제정책에 반발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41년 만에 처음으로 5ㆍ18 때 계엄군이었던 7공수여단 중사가 무고한 청년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고, 국립5ㆍ18묘지 희생된 청년의 묘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고 했다. 그런데 피해자의 가족들이 가해자를 용서했다.
그 후 5ㆍ18 때 3공수여단 11대대 지역대장이었던 소령이 국립5ㆍ18묘지를 찾아가 5월 영령들에게 무릎 끊고 용서를 빌었다. 그의 부대는 광주에 가서 폭동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병사들이 교도소 앞에서 시민들을 조준사격하여 30~40명을 사살하고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5ㆍ18의 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 직접 나서서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이태 전에 나는 공수특전사 장교였다. 전방부대에 근무하다 휴가를 받아 처가가 있는 광주에 왔다가 우연히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제는 한때 동료 장병들이었던 계엄군으로 파병된 공수특전사 장병들과 관련자들이 양심선언을 하여 화해하는 마음으로 5ㆍ18의 아픈 역사를 치유했으면 좋겠다.
광주는 이제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다. 광주와 같은 아픔을 겪는 미얀마 양곤에서도 언젠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양심선언을 하는 군경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5ㆍ18민주광장에서 메아리치는 냄비 소리가 미얀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특히 북한에까지 울려 퍼져 민주화가 이루어진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력
ㆍ『한국수필』(1994) 수필, 『문학춘추』(2001) 평론 등단
ㆍ 저서 : 『하늘 메아리』외 9권
ㆍ 한국문협 국제문학교류위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전남문협 이사, 광주문협 평론분과위원장 등
ㆍ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광주문협), 아시아서석문학상 대상
ㆍ 문학박사, 육군 대위 전역,(ROTC14기), 전 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