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한국수필』 5월호, 월평 <수필의 문학적 변용>

김 한 호 2022. 4. 17. 12:34

한국수필』 5월호, 월평

 

수필의 문학적 변용

 

김 한 호

 

수필은 사실적 체험을 상상력을 통해 언어로 형상화한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일상의 삶에서 남과 다른 안목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여 개성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작품으로 창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필가들은 상상이나 형상화 과정 없이 생활 속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필은 중수필과 경수필로 나뉘며, 경수필은 생활수필과 문학수필로 나눌 수 있다. 생활수필은 사실적 체험만을 기록한 글로서 생활 속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사실적인 기록물이다. 반면에 문학수필은 문학성이 있는 수필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 행위가 언어를 통해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글이다.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문자로 기록되거나 책으로 인쇄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은 내용, 형식, 표현으로 이루어지며, 정서, 사상, 상상 등을 갖춘 문학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수필은 수필의 3요소인 주제, 문장, 인간미를 잘 갖추고 있으며, 짜임새 있는 구성과 문학성이 돋보이는 수필을 문학수필이라고 한다. 수필이 생활 속의 이야기라고 해서 사실 그대로 표현한 신변잡기는 생활수필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필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 행위가 언어를 통해서 문학적으로 변용되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문학적 변용이란 문학적 발상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활용하여 객관적 사물을 자신의 주관에 맞게 변형시켜 형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 형상화란 감정, 정서, 관념, 사물 등을 언어로써 실감 있게 바꾸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수필에서 체험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상상이라고 한다.

수필을 쓰는 것은 과거의 질서 없는 체험의 세계를 현재의 의식화된 상상력을 통해 질서화 된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적 창조 행위이다. 즉 과거에 기억된 질서 없는 체험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직접경험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세계에 펼쳐지는 상상 내지 사유까지 포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러한 체험을 문학적 표현 기법을 활용하여 수필이라는 하나의 구조로 변용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사실적 체험에다 문학적 변용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해야 한다. 좋은 문학 작품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한 형상화 과정을 거친 표현 기법이 뛰어난 창작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수필을 가리켜 가장 어려우면서도 쉽게 느껴지는 글이라고 한다.

 

한국수필4월호에는 총 56편의 신작이 실렸다. 모처럼 한국수필에 실린 수필들을 모두 읽으면서 한국 수필문학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문학수필보다는 생활수필로 양적으로 급증하는 수필가에 비해 수필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아쉬웠다. 하지만 좋은 수필 몇 편을 선정하여 수필의 문학적인 변용을 중심으로 월평을 하고자 한다.

먼저 특집 1 ‘4월의 마음에 실린 12편의 수필 중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정길님의 물꼬를 들 수 있다. 이 수필은 사실적 체험에다 문학적 변용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가의 진실된 삶의 모습이 드러난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이 수필은 물꼬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의미화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삶이 자신에게 전이되어 오듯 천수답 농사를 짓는 농부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몸이 아파 어머니와 오 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었다. 필자 역시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아버지가 그토록 농사일에 정성을 쏟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아버지의 삶처럼 진실하고 최선을 다해 왔는가를 되돌아본다라고 하며, 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김희재님의 이마에 가시 문신은 북유럽 여행 중에 핀란드 헬싱키 선착장 풍물시장에서 공예품을 파는 여인의 이마에 새겨진 가시 문신을 보고 쓴 수필이다. 이 수필은 북유럽 여행 중에 여정, 견문, 감상을 쓴 기행수필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얻은 소재를 자신의 주관에 맞게 변형시켜 형상화한 개성적인 작품이다.

필자는 그 문신이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인 줄 알았으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문신의 그림을 보고 순탄하지 못했던 삶의 고통과 절규를 느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흉터 하나쯤은 다 있다. 피부에 새겨 공개적으로 표현했느냐, 마음에 새겨 두고 자기만 꺼내 보느냐만 다를 뿐이지라고 하면서 더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인생. 내 삶은 이로써 충분합니다라고 외친 그녀의 말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수필을 읽으면서 문장이 간결 명료하지 않은 대화체 문장을 삽입함으로써 독자의 상상으로 문학의 애매성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집 2 ‘참 좋은 문학회’ 14편의 수필 대부분이 문학수필이라기보다는 생활수필이다. 작품의 소재에 따라 문학수필보다 생활수필을 선호하는 수필가도 있다. 그렇지만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적 체험에다 상상력에 의한 형상화 과정을 거친 창작이어야 한다.

이동석님의 반려견도 해줄 수 없는 것이란 수필은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문학은 글을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읽으나 마나 한 글,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는 독자나 듣는 이가 싫증을 느낀다. 그래서 재미가 없고 유익하지 않는 글은 독자들이 외면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애써 창작한 작품일지라도 독자들이 마음대로 평가하여 읽지 않는다면 글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이 수필의 줄거리는 윗집 아저씨가 개한테 코와 입을 심하게 물렸다. 아파트에서 목줄도 없이 필자를 물려든 개의 주인이 윗집 여자였다. 지금은 이사 간 윗집 부부와 아들은 한밤중에도 시끄럽게 싸웠다. 필자도 형님집 개에 물려 열 바늘이나 꿰맨 적이 있었다. 반면에 치매 노인을 찾아준 개나 기러기 아빠인 후배의 개처럼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견도 있다라고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마무리를 우리 윗집 개처럼 자기 여자 주인만 주인으로 알고 반쪽 주인의 코와 입을 물고, 옆집 형님네 개처럼 평소에는 친하게 굴다가 먹을 거 앞에서는 이웃도 몰라보고 돌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부분이 아쉽다. 개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말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 행위가 언어를 통해서 문학적으로 변용되었더라면 독자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차후 마무리 부분을 잘 다듬으면 더 좋은 수필이 될 것이다.

사색의 뜰17편의 수필이 실렸다. 그 중에서 허철욱의 간 월(看 月)은 간월암을 찾아가 느낀 소회를 불교철학을 통해 사유한 개성적인 수필이다. 필자는 간월암을 찾아가 달 맛을 보았다는 선승인 무학대사, 만공선사의 행적을 따라 상상하면서 쓴 불교적인 수필이다. ‘달을 맛보았다는 표현도 낯설게 하지만 옛 스님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비추어 드러낸 표현 기법이 탁월하다.

우리는 답습하는 존재가 아니다. 선사나 대사들도 그전의 것들로부터 부단히 새롭게 하기 위해 정진하며 마음을 닦았을 것이다. 고여 있으면 썩는다. 달이 차고 기울듯이 모든 것은 변한다. 순간순간 새롭게 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삶의 철학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달과 무망한 바다와 한 조각의 땅 위에 선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그러나 달과 친구가 된 무학대사와 만공선사는 우주의 운행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수필을 끝맺음했다.

 

수필가들 중에는 허구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필에도 허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허구와 상상에 대해 피력하고자 한다.

수필은 작가가 체험을 통해 느끼고 깨달은 삶의 지혜를 독자와 공유하는 자기 고백의 문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필이 다른 문학과 다른 점은 허구가 아닌 작가의 진실된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나 허구는 실제로 없는 일을 작가의 상상에 의해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수필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자신의 사실적 체험인 양 꾸며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수필은 작가의 인격적 고백으로 한 편의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문학은 상상에 의한 허구의 세계이지만 수필은 현실적으로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비허구적인 문학이다. 수필은 사실을 기준으로 상상력을 통해 경험(직접경험, 간접경험)을 재구성하여 작품을 창조한다. 수필은 처음부터 허구로 창작하지 않을 뿐이지 작가의 기억에 의존한 상상이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 작품화할 때 그것을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기억이라는 상상을 통해 유추해 낼 수밖에 없다.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 내용, 형식,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상상이란 체험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문학 작품의 내용은 장르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현실로서의 인간의 삶상상한 인간의 삶의 세계로 나눌 수 있다. 수필은 현실로서의 인간의 삶이다. 수필에 있어서 인간의 삶이란 허구가 아닌 작가의 사실적 체험을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 상상의 폭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사실이나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수필을 가리켜 자전적 문학이라고 한다.

수필은 사실적 체험만을 그렸느냐, 아니면 사실적 체험에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었느냐에 따라 수필의 문학성이 달라진다. 문학에 있어서 창작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만큼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에 따라 작가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거나 대상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허구가 아닌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다 자유롭고 흥미롭게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김한호 약력

 

한국수필수필(1994), 문학춘추평론(2001) 등단

문학박사, 전 고등학교 교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국제PEN광주 부회장, 광주문협 평론분과위원장 등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아시아서석문학상 대상 등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10

21세기 한국교육 희망을 말하다(공저) 2021. 세종도서 학술부문 최우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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