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자 란
김 한 호
꽃샘바람이 불 때면 군자란(君子蘭)은 꽃을 피운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꽃봉오리들이 개구쟁이들 마냥 ‘저요! 저요!’ 하며 봄 햇살에 활짝 꽃을 피운다. 군자란의 꽃 피는 모양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같이 순수하고 정겹다.
나는 군자란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다양한 꽃을 가꾸어왔다. 야생화를 가꾸기도 했고, 수백 분의 국화를 재배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동양란을 비롯하여 다양한 화초들을 취미삼아 가꾸고 있다. 그 꽃과 나무들은 내 벗이 되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삶의 활력을 찾곤 한다.
군자란은 수선화과에 속한 꽃이면서도 난(蘭)처럼 군자의 기품을 지녔다고 하여 군자란이라고 불린다. 난은 매(梅), 국(菊), 죽(竹)과 더불어 사군자 중의 하나이다. 모든 식물은 뿌리가 죽으면 잎도 시들어 죽는다. 그러나 난은 뿌리가 죽어도 석 달 동안이나 잎의 푸름을 잃지 않고,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사군자로 불린다.
나는 군자란의 풋풋한 자태에 매혹되어 40여 년 동안 무늬종 군자란을 길러왔다. 군자란을 가꾸는 것은 군자를 닮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군자란 꽃이 피면 꽃가루받이를 하여 열매를 맺게 하고, 봄이 되면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운다. 그리고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어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면 꽃나무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꽃을 가꾸면서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실천하고 있다면, 이는 군자의 덕성을 닮아가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꽃을 가꾸는 취미생활은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다. 꽃을 가꾸는 마음은 소유하는 마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가꾸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꽃을 피워 아름다운 정서를 함께 나누는 행복한 삶인 것이다.
꽃은 원래 자연이다. 자연 속에 사는 동식물들은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식물의 생식기는 꽃이다. 그래서 꽃들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예쁜 꽃을 피우고 짙은 향기를 내뿜어 새나 곤충을 유혹한다. 곤충이 없는 겨울에 동백꽃은 불타는 듯한 꽃잎으로 동박새를 유혹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는 시체 썩는 냄새를 풍겨 곤충을 유혹하여 꽃가루받이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하찮게 보이는 들에 핀 꽃이나 하늘을 나는 새들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의미가 있다. 하나의 풀꽃, 한 마리의 벌레가 도서관에 있는 책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연은 말없는 스승과 같다. 자연은 그 자체가 속임이 없고 꾸밈이 없는 선이며 오묘한 예술인 것이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의 성현들은 자연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다.
옛 성현들은 꽃을 사람에 비유하여 품격을 매겼다. 아무리 잘생긴 사람이라도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 군자라고 할 수 없듯이, 비록 꽃이 예쁘다고 해도 은은한 향기가 없으면 최상의 꽃으로 여기지 않았다. 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논어에 ‘군자는 옳은 일을 하고, 소인은 이익 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동식물들은 자연의 질서에 따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물질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해치는 사람을 어찌 군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꽃의 여신 플로라가 최초로 만든 코스모스로부터 마지막에 만든 국화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꽃에 의미를 부여하고 꽃말을 만들기도 했다. 본래 난이 아니면서도 군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군자란처럼 비록 군자의 성품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군자의 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군자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2022년 3월 3일(목) <전남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