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살던 고향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옛 사람들은 도깨비와 더불어 살았다. 그 당시에는 도깨비들이 참 많았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어두운 밤이면 헛것들이 도깨비로 보였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뒤에 생기는 귀신과는 달리 사람의 모습이나 도깨비불로 나타난다. 대개 도깨비는 빗자루, 절굿공이, 도리깨 등 오래 쓰다 버린 일상용품이 변해서 된 것으로 동굴이나 오래된 폐가, 당산나무 속에 살며 밤에만 활동한다.
도깨비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돗가비니’에서 온 말로 ‘씨앗’이나 ‘불’을 의미하는 ‘돗’과 ‘애비’가 합쳐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성인 남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깨비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 돈과 보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도깨비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고, 못된 사람을 골탕 먹이기도 한다.
옛날 사람들은 도깨비하고 씨름을 했다. 할아버지는 “도채비 허고 씨름을 헐 때는 왼 다리를 잡아야 이기는 기여. 오른 다리는 힘이 무지하게 쎄기 때문에 힘 쎈 장사라도 이길 수 없당께. 왼쪽 다리는 헛깨비여”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도깨비의 오른쪽 다리를 붙들고 밤새 씨름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도깨비는 오랜 세월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살았다. 지금은 도깨비 이야기가 사라지고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도깨비에 관한 민담이 많이 전해져왔다. 도깨비가 김(金)씨가 되었다는 김씨 성을 가진 나는 어릴 때 별명이 도채비였다.
도깨비는 일제 침략이나 6ㆍ25전쟁 등 수난의 시대에 많이 나타났다. 한국전쟁 3년은 한반도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보릿고개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들녘을 걸어가노라면 굶어죽은 거지들이 낮도깨비처럼 보리밭에 널브러져 있었다. 설익은 풋보리를 한입이나 입에 물고 죽어 있었다.
삶의 희망이 없던 어려운 시절에 도깨비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도깨비는 인간이 창조해 낸 허구의 세계이지만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으로 눈물을 닦으며 살았다.
세상이 도깨비에 홀린 듯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버렸다. 전기불이 들어오면서 초롱불이 꺼지자 도깨비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집집마다 전등이 밝혀지고 마을마다 가로등이 들어오면서 도깨비들이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렸다. 도깨비가 사라지자 조상 대대로 이어온 농경사회의 전통이 무너지고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갔다.
고향은 그리운 보금자리이다. 고향은 어린 시절 부모 형제, 친구들과 몸 부대끼며 살던 아름다운 추억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겐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항상 그리운 곳이다. 이제는 고향이 개발되어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지라도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던 고향은 차마 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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