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대나무꽃

김 한 호 2023. 7. 30. 10:36

대나무꽃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대나무는 따뜻한 남쪽지방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그런데 전남과 경남 지방에 7, 8월이 되면 대나무가 꽃이 피어 말라 죽고 있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자라는 식물로 모죽은 5년 동안 땅속에서 자라다가 죽순으로 나와 1년에 20미터 이상 자란다. 그 후 50년가량 살다 수명이 다하면 대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고 죽는다. 대나무는 일생 동안 한 번 꽃이 피는데 대나무꽃이 피면 환란이 생긴다고 전해오고 있다.

 

대나무는 바나나, 야자수, 용혈수와 같은 초본식물이다. 대나무는 볏과 식물인 풀인데 나무로 불리고 있다. 나무로 분류되려면 단단한 목질부가 있어야 하고, 부피 성장을 하여 나이테가 있어야 하는데 나이테가 없다. 윤선도의 오우가에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대나무는 사군자 중의 하나이다. 사군자는 왕조시대에 양반들이 왕을 위한 지조와 절개이지, 백성들에겐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일 따름이다. 대나무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 겨레를 지켜온 민초(民草)이다. 민초는 바람보다 더 빨리 쓰러지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운다.

 

대나무는 풀이기 때문에 목재로 쓰이지 못하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나무를 소재로 만든 죽산품으로는 가재도구, 농기구, 어구, 악기, 공예품 등 다양하다. 그중에는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들이 쓰던 삿갓과 죽장이 있다. 그리고 대나무를 날카롭게 깎은 죽창은 불의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무기가 되었다.

 

민초들은 불의와 외침에 저항하여 죽창을 들고 봉기했다. 변방에서 차별받고 수탈당하며 살아온 민초들은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렬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부패한 사회에 항거한 동학농민혁명,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에 대항하여 싸운 의병들,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주항쟁 등이 있다.

 

대나무는 수난의 역사 속에 민초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광양 백운산 자락의 산골마을에는 대숲에 땅굴이 있다. 625전쟁 후 백운산에는 빨치산들이 은거하고 있었다. 밤이면 빨치산이 내려와 식량을 약탈하고, 젊은이들을 끌고가 빨치산이 되기를 강요하다 반항하면 죽여버렸다. 그래서 빨치산에게 잡혀가지 않기 위해 대밭에 땅굴을 파고 숨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낮에는 태극기를, 밤에는 인공기를 걸어두기도 했다. 산골마을에 살던 아재는 빨치산에게 잡혀가 부역을 했다고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여 정신병자가 돼버렸다. 그는 실성하여 헛소리를 하며 혈죽으로 만든 피리를 아무렇게나 불어댔다. 그의 피리 소리는 대숲에 부는 비바람소리처럼 들렸다.

 

삼국사기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대나무 악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신라 31대 신문왕 때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그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누어지고 밤에는 합쳐진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하게 될 것이다.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불자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쾌유되며 가뭄에도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맑게 개며 바람이 지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래서 이 악기를 만파식적이라 불렀다.

 

대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불안해하는 민심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만파식적을 부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시대에 경기 불황, 자연 재해, 사회 분열 등으로 혼란한 이 시국에 누가 만파식적을 불 것인가? 우리의 역사를 지켜온 민초들이 국민 화합을 위한 만파식적을 불어야 한다. 대나무 같이 살아온 민초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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