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그날의 축제

김 한 호 2023. 10. 5. 16:05

그날의 축제

 

김 한 호

 

그날 이태원에서는 광란의 축제가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열리지 않았던 할로윈 축제에 10만 인파가 몰려와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156명이 압사하고 320명이 부상을 당했다. TV 뉴스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치안과 위기 대응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슬픔과 분노가 치솟았다.

 

축제는 참가자들이 일상에서 일탈하여 광기를 발산하는 잔치 마당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외국처럼 열정을 분출할 만한 축제가 없어 아일랜드 켈트족의 사탄 숭배 제례의식인 할로윈 축제에 몰려들었다. 할로윈 축제는 켈트족이 1030일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여 모든 악령을 몰아내고 새해에는 행운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야제이다. 그 축제를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태원에서 했던 것이다.

 

이태원은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운정사를 불태우고 여승들과 피난을 가지 못한 아녀자들을 겁탈했다.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의 보육원을 이민족의 피가 섞였다고 이태원(異胎院)이라고 불렀다. 그 후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는데 효종 때 배나무가 많아 이태원(梨泰院)이라 고쳐 불렀다. 이태원이 있는 용산 일대는 이방인의 땅으로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사령부가,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광복 후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예로부터 축제는 원시 제례의식으로 집단 공동체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원시종합예술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이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한국의 축제는 단오와 추석 같은 명절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민속놀이를 하며, 전통 문화를 보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명절이 아닌 최초의 축제는 1931년에 시작한 남원의 춘향제와 1948년 진주 개천예술제는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지방단치단체에서 축제의 붐이 일기 시작하여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축제를 하고 있다. 한국의 축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이 되어 관광객을 유치하여 얼마만큼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느냐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을 위한 지역 특산물 판매나 연예인 초청 행사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즐기며 노는 축제 본래의 재미가 사라져버렸다.

 

예전에는 추석이나 설날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노래자랑이나 씨름, 줄다리기 같은 민속놀이를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1200여 개의 축제가 있으나 관 주도의 획일적인 축제이다. 이와 달리 일본은 23000여 개, 프랑스와 스페인은 10만여 개의 축제를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소몰이 축제, 프랑스의 카니발 드 파리 축제,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 축제는 지역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광기와 웃음으로 신명나는 축제를 한다. 또한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는 축제 때 짝을 찾는 놀이를 하여 혼인에 이르는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축제는 즐거운 날이면서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축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여 지역민이나 관광객은 구경만 할 뿐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할로윈 축제에서 왜 젊은이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광란의 축제에 열광했는지 그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축제는 노래하고 춤추는 K팝의 나라답게 다 같이 즐거운 축제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약력

ㆍ문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ㆍ육군 대위 전역(ROTC 14), 전 고등학교 교장(홍조 근정훈장)

ㆍ저서 :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10, 21세기 한국교육 희망을 말하다(공저), 2021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최우수도서

ㆍ수상 :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광주문협), 아시아서석문학상 대상, 한민족문화예술 대상(서울특별시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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