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노파와 낙타

김 한 호 2023. 11. 2. 15:42

노파와 낙타

 

김 한 호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두운 저녁에 시장 골목에서 낙타처럼 등이 굽은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어떤 노파가 폐지를 모으는 중이었다. 리어카에는 종이박스와 폐품들이 너저분하게 실려 있었다. 땅거미가 저문 늦게까지 리어카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짠해 보였다.

 

10여 년 전에 인도를 여행할 때였다. 해 질 녘에 노인과 소년이 호텔 앞에 낙타를 몰고 왔다. 낙타를 앉혀 놓고 소년이 춤을 추고, 노인은 헝겊으로 만든 낙타 인형을 팔고 있었다. 수공예품으로 만든 낙타는 자기 집에서 만들었을 성 싶었다. 우리 일행은 가난한 노인과 소년을 위해 낙타 인형을 사 주었다.

 

어두운 밤에 폐지를 줍는 노파가 왜 낙타처럼 보였을까? 등이 굽은 노인이 앉아 있는 낙타처럼 보였던 것은 인도에서 보았던 불쌍한 낙타 소년과 노인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리라.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가난한 나라에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빈곤하게 사는 그들을 볼 때마다 625전쟁 후에 학교에서 구호물자인 강냉이죽을 먹고 자란 어두운 세월 저편의 기억이 떠오른다.

 

낙타는 천적을 피해 사막에서 처절하게 살아간다. 낙타는 초식동물로 가시가 있는 낙타풀과 선인장도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잘 먹는다. 낙타는 물을 한동안 먹지 않고 견딜 수 있지만 한번 지쳐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서 사막을 여행할 때는 여러 마리의 낙타를 데리고 다닌다.

 

낙타의 조상은 4천만 년 전에 북아메리카의 추운 지방에서 살았다. 낙타는 넓은 발로 설원을 이동하였고, 등에 있는 혹은 지방을 축적하여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발달했다. 그런데 낙타가 빙하기 때 베링해협을 건너 유라시아로 건너갔다. 추운 극지방에 살던 낙타가 왜 덥고 메마른 사막으로 갔는지? 왜 북아메리카에서는 멸종됐는지 알 수 없다.

 

낙타의 멸종처럼 1960년대부터 많이 있던 넝마주이들이 1990년대에 사라지자 폐지 줍는 노인들이 나타났다. 넝마주이들은 폐품이나 헌옷, 헌 종이를 집게를 사용하여 망태기에 담아 폐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다리 밑에 살거나 야산 아래 토막집을 짓고 집단으로 거주했다. 이들 젊은이 중에는 1980518민주항쟁 때 시위에 참여하여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하여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다가 도시에 와서 노동자로 일하다 이제는 늙어서 일자리가 없어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 전국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15000여 명이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1시간 20분으로 수입은 1428원이라고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였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돌봐주는 사람 없이 시나브로 야위어가는 삶을 버티며 빈 수레를 끌고 어둔 골목길을 누비고 다닌다.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가난을 안다. 폐지를 줍는 독거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외롭고 눈물겨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가끔 폐지 줍는 노파에게 신문지를 모아다주고 적은 돈이나마 드리지만 생계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한국에만 폐지 줍는 노인이 있다고 하니, 정부에서는 이들이 폐지를 줍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낙타가 삭막한 사막에 살듯이 폐지 줍는 노파도 사막 같은 동네에서 외로운 낙타처럼 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해 질 녘에 리어카를 밀어주며 뒤따라갔다. 그녀가 사는 집 가까이 다가오자 고맙다고 하면서 이제 가시라고 한다. 초라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멀찍이 보이는 산동네 집에는 오선지에 거꾸로 매달린 음표처럼 빛바랜 옷들이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약력

문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전 고등학교 교장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아시아서석문학상 대상, 한민족문화예술상 대상(서울특별시장상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10, 21세기 한국교육 희망을 말하다(공저) 2021. 세종도서 학술부문 최우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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