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가 많은 사회
김 한 호
어떤 노인이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구경꾼처럼 쳐다보고만 있을 뿐 싸움을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방관만 하고 있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괜히 싸움을 말리다가 오히려 시비에 휘말릴까 염려해서인지 모두들 무관심했다. 뒤늦게 목격한 내가 그를 도와주었다.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장교 출신으로 의협심이 강했다. 그래서 위험한 일에 뛰어들거나 불법적인 일이나 예절 없는 행동에 간섭했다가 도리어 피해를 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가급적이면 관여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위급한 상황이나 잘못된 일을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는 남의 불행이나 아픔에 무관심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위험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불법을 저지르든 말든, 예절이 있든 없든,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만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묻지마 살인’이나 ‘충동 범죄’와 같은 위험한 사건이 발생해도 먼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 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1964년 뉴욕에서 발생한 부녀자 살인사건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연구로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방관자 효과는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적인 사회가 될수록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위급한 상황을 보고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방관자들이 많다. 특히 어린이나 어르신, 여성,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로 곤경한 상황에 처하면 주위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더구나 위험에 처한 상황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방관자들에 대해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2011년에 중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로 만든 《버스 44》는 방관자의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때 불량배 두 명이 여성 버스기사를 성희롱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는데, 중년 남자가 불량배들을 말리다가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불량배들은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여성 버스기사를 숲속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을 했다.
여성 버스기사는 울면서 버스로 돌아와 중년 남자를 다짜고짜 내리라고 소리쳤다. 중년 남자는 “난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내리라고 하느냐?”고 항의하면서 내리지 않자. 그녀는 큰소리를 지르며 “당신이 내리지 않으면 버스를 출발하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 승객들은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버렸다. 여성 버스기사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커브길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리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여성 버스기사는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해도 못 본 척 외면한 방관자들을 죽음의 길로 함께 데려갔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공동체는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거나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헌신적으로 구조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로운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회일수록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남의 어려움에 무관심한 방관자들이 많다. 그렇지만 방관자들처럼 남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모른 체 외면한다면, 자신도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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