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무등에 살어리랏다

김 한 호 2019. 7. 12. 20:53

무등에 살어리랏다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무등산에 올라 / 무등(無等)을 보니 / 평등(平等)을 바라던 / 민초(民草)들이 / 너덜겅 같네

5행 시는 디카 시화전에 전시된 자작시이다. 무등이 좋아 무등산에 자주 오르다보니, 주상절리가 무너져 부서진 너덜겅이 마치 평등을 외치다 죽어간 전라도 사람들 같아 보였다.

무등산은 등급이 없는 산이라고 한다. 변방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차별받으며 살아온 수난의 역사 속에서 어머니 같은 무등산은 아픔을 달래주던 산이다.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 때 의병으로 죽어간 부모형제들, 동학농민혁명 때 억울하게 죽은 농민들, 그리고 5.18광주민주항쟁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죽은 수많은 사람들이 무등산을 바라보며 울었을 것이다.

이러한 무등산을 삼국사기에는 무진악이라고 했으며, 고려사에는 무등산이라고 했다. 무등은 무돌의 이두식 표기로 무지개 돌이라고 하며, 무등산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비로운 돌기둥의 모습이 상서롭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무등산을 무당산이라고 부르며, ‘무당골골짜기가 있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무등산은 역사적으로 군사 요새지로 지금도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등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했으며, 동학농민혁명과 항일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몸 바쳐 싸운 구국열사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무등산은 아름다운 경관과 신령스러운 산일뿐만 아니라 국난을 이겨낸 선열들의 얼이 깃든 산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무등산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화산 폭발로 형성된 천연기념물 465호인 입석대서석대’, ‘광석대같은 56각형의 돌기둥인 주상절리가 서 있다. 주상절리는 화산재가 굳어진 응회암으로 1187m 무등산 정상에서 800m 능선까지 펼쳐져 있다. 무등산 일대는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인 8500만 전에 세 차례의 화산 분출로 주상절리대가 형성되었으며, 바위에는 공룡과 익룡 발자국이 남아 있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산 정상 부근에 돌기둥이 최대 7m 높이로 솟아 있으며, 11면적에 세계적인 규모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무등산에는 5만년 전에 주상절리가 무너져 쌓여 있는 너덜겅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산재하고 있다. ‘너덜또는 너덜겅은 돌기둥이 무너져 부서진 바위덩이로 산비탈에 넓은 돌밭을 이루고 있다. 무등산에는 무당골 너덜’, ‘덕산 너덜’, ‘지공 너덜’, ‘인계리 너덜’, 크게 네 개의 너덜군이 있다.

무등산은 정상인 천왕봉과 지왕봉, 인왕봉에 이르기까지 주상절리와 너덜겅이 있어 돌산 같아 보이지만 모난 돌을 덮고 있는 흙이 많은 토산이다. 무등산 정상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더라도 둥그스름한 모습으로 산세가 유순하여 인자한 어머니 같은 산이다. 광주 시내에서 정상이 보이며, 옛 전남도청에서 직선거리로 9의 가까운 거리여서 시민들이 자주 찾아가는 산이다.

나 역시 무등이 좋아 퇴직 후에 무등산을 자주 올라간다. 그러께 겨울에는 박교수님과 함께 눈 덮인 서석대와 입석대를 보러 갔다가 척추 디스크가 재발하여 야간에 119 대원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내려와 구급차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작년 가을에는 디스크가 더 악화되기 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규봉암과 광석대를 가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여 일행들과 함께 규봉암을 갔다. 그런데 중머리재에서 약사사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에서 넘어져 해가 진 어두운 밤에 겨우 약사사까지 와서 국립공원공단 차를 타고 내려왔다. 허리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무등산을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제도 어쩔 수 없이 친구들 따라 약사사를 다녀왔다.

광주에는 어머니 같이 다정다감한 무등산이 있어 좋다. 더구나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민주ㆍ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무등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무등산 정상이 보이는 무등산아이파크에 살며, ‘무등산 입석대 설경사진이 걸려 있는 방에서 무등에 살어리랏다(살겠노라)’고 글을 쓰고 있다.


ㆍ 문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전 고등학교 교장

ㆍ 저서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2018, 범우사) 7

ㆍ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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