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에 피는 매화꽃
김 한 호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백운산 자락의 섬진마을에는 ‘광양 매화축제’가 열린다. 매화축제가 열리는 섬진강가 매화마을에는 하얀 매화꽃이 눈부시게 피고 꽃향기가 흩날리면 한 폭의 한국화 같이 아름다운 별천지가 된다. 그래서 3월이면 무릉매원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상춘객들로 한적한 시골마을이 북적거린다. 그런데 올해는 조류 독감과 구제역 때문에 매화축제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지 않는 올봄은 여느 해와는 달리 대한민국이 혼란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된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특별검사 수사로 관련자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온 나라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로 국론이 분열되고 서로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다 지난해 11월에 발병한 조류 독감으로 3천만 마리가 넘는 닭, 오리, 메추리가 살처분됐으며, 올해 초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수천 마리의 소와 돼지 등이 매몰 처리되고 있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짐승들까지도 감염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해서 생매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백운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이 산골마을의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것처럼 말이다. 빨치산은 여순반란사건 때 좌익사상에 물든 빨갱이들과 6.25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이 백운산과 지리산에 숨어들어 남부군 부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부역을 강요하고 식량을 약탈하다 순응하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죽였다. 그중에는 무고한 젊은이들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거나 빨치산이 되기도 했다.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국군과 경찰이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여 대부분이 궤멸되었으나 일부 잔당들은 백운산에 남아 게릴라전을 벌리며 관청을 공격하고 민가를 불태웠다. 그들은 총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각오를 하며,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목숨을 바쳤지만 오히려 김일성 공산독재는 3대 세습을 하며 북한주민들을 공포정치로 핍박하고 있다.
봄이 오면 눈 녹은 산골짜기에는 매화꽃이 피고, 진달래꽃도 핀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꽃이 피면 꽃구경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참꽃을 따 먹기 위해 산으로 갔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잔설이 남아있는 산골짜기에서 얼어 죽은 빨치산의 시체가 계곡물에 떠내려왔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치를 떨었다.
지금은 백운산 자락에 화전민들이 떠나가고 없지만 그들이 살다간 빈 집터에는 빨치산들의 만행을 지켜 본 매화나무가 남아있다. 그 나무는 같은 민족끼리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해마다 이른 봄 양지뜸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면 슬픈 사연을 간직한 매화나무에는 핏빛 꽃이 그들의 넋처럼 피어난다.
백운산의 봄꽃은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매화꽃이 피면 휘파람새가 울고, 진달래꽃이 피면 두견새가 운다. 휘파람새가 구슬피 우는 까닭은 한반도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경고의 소리일 것이다. 남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대통령선거로 나라가 분열되고, 북한은 핵 개발과 김정남의 암살로 독재정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매화를 찾아 탐매를 나선다. 나도 봄이 되면 매화꽃 향기를 찾아 꽃구경을 간다. 그러나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로 나뉜 올해의 매화꽃은 예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더구나 같은 백운산 자락에서 피는 매화꽃인데도 섬진마을에서 피는 하얀 매화꽃과 산골마을에서 피는 붉은 매화꽃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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