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와 떨겨>
김 한 호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지듯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떨켜를 만들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린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인간도 낙엽과 같다. 늙으면 나뭇잎 떨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는다. 야생동물들도 겨울나기를 위해 털갈이를 한다. 그러나 나무들은 옷을 벗듯이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맞이를 한다. 가을이면 나무는 밤과 낮의 길이와 온도 차이를 감지하여 단풍이 든다. 낙엽은 가장 늦게 돋은 잎이 먼저 떨어지고, 먼저 돋아난 잎이 가장 늦게 떨어진다.
단풍이 든 나무는 떨켜를 만들어 영하의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얼기 쉬운 잎을 떨어뜨린다. 떨켜는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세포층이다. 나무는 봄에 잎이 될 조직을 여러 겹의 세포로 싸서 얼지 않도록 겨울눈(休眠芽)을 만든다. 겨울눈은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미생물의 침입을 막아줌으로써 봄에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나무처럼 봄에 싹을 틔워 아름다운 청춘의 꽃을 피운다.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과 촉촉한 비를 맞으며 푸른 잎이 무성해지듯 젊음이 충만해진다. 가을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튼실한 열매를 맺듯이 인생이 영글어진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낙엽은 떨어지고 떨켜를 만들지 못한 채 앙상한 겨울나무가 된다. 떨켜를 만들 수 없는 인간은 또 다시 새봄이 찾아오지 않는다.
나무는 한자리에서 일생을 살아가면서 꽃 피고 열매 맺는다. 모든 나무가 아름다운 꽃이 피고 알찬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나무 중에는 병들어 떨어진 이파리, 사고로 부러진 나뭇가지, 오염으로 썩은 뿌리 등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나무들도 많다. 나무뿐만 아니라 인간도 생노병사를 겪으며 죽는다.
꽃이 피듯 다가와서 잎이 지듯 가는 인생! 우리 인생도 나무처럼 살아가야 한다. 나무는 늙어서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고상한 기품과 우아한 모습이 된다. 사람도 연륜이 쌓이면 하는 일이 경지에 이르고 인품도 중후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나도 기품 있는 고목처럼 늙어가고 싶다.
낙엽 속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겨울나기를 한다. 나는 공수특전사 장교일 때 낙엽 덕분에 혹한기 특수전 훈련을 견뎌낸 적이 있었다. 눈 덮인 산속에서 낙엽을 깔고 침낭 위에 낙엽을 덮고 잤다. 입이 덜덜 떨리는 추위에 잠을 설쳤지만 낙엽의 온기로 얼어 죽지는 않았다. 하찮게 여긴 낙엽이 생명을 보존해 주는 가치 있는 존재였다.
우리 인생은 낙엽과 같은 존재이다. 죽음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언젠가는 낙엽처럼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흔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업적이나 작품으로 그 사람의 존재 가치이다.
지난 11월 초 불국사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 국제펜클럽 광주와 부산 지역위원회 행사를 경주에서 했는데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코로나나 질병은 인간에게 낙엽을 재촉하는 떨켜와 같은 것이다. 떨켜 때문에 낙엽이 될지라도 나의 문학은 새봄이 되면 움트는 겨울눈(休眠芽)과 같은 존재이다. 나의 작품은 겨울눈처럼 해마다 봄이 되면 싹이 터서 푸른 나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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