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세콰이아 여인
김 한 호
20여 년 전, 어느 문예지에 등단작가 수필 심사위원을 할 무렵이었다. 몇몇 투고자의 작품과 함께 촌스런 이름을 가진 어느 여성의 수필이 내 이메일에 갇혀 있었다. 문예지 회장에게 전화를 하여 그녀의 수필은 등단시키기엔 미흡하다고 했더니 고쳐서라도 꼭 등단을 시켜달라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전화를 했다. 원고를 고쳐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순순히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다고 하면서 언제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듬어 심사평과 함께 출판사에 보냈다.
첫눈이 내리던 어느 날, 퇴근 무렵에 내 직장에 그녀가 찾아왔다. 시골에서 광주까지 와서 이곳의 길을 몰라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메타 세콰이아 가로수길이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운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첫인상이 시골 아낙네라기보다는 이국적인 메타 세콰이아 가로수처럼 매혹적인 중년 여인이었다. 그런데 나목처럼 옷에 아무런 악세사리도 없어 마침 가지고 있던 ‘사랑의 열매’를 의미 없이 그녀의 옷깃에 달아주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잊을 만하면 전화를 했다. 그녀를 만나면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자칫 불륜으로 이어져 애써 쌓아놓은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동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을 했던가. 그렇다고 그녀와 만남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메타 세콰이아 가로수길이 좋아 여길 온다고 둘러댔다. 정말로 이 길을 좋아하는지, 나를 좋아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을 받은 이 길을 나와 함께 자주 걷고 싶다고 했다. 그리곤 메타 세콰이아를 어떻게 번식하느냐고 물었다. 삽목으로 한다고 대답하니, 사람이나 나무는 ‘씨’가 있어야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선문답 같은 말을 했다.
담양의 메타 세콰이아 가로수길이 생기게 된 사연이 떠올랐다. 겨울이면 지방국도인 이 도로가 눈으로 뒤덮여 어디가 길이고 논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고건 도지사가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지 않도록 키가 크고 빨리 자라는 메타 세콰이아 나무를 가로수로 심도록 했다. 이 나무는 1943년 중국 양자강 상류에서 발견되었는데, 담양 메타 세콰이아는 1952년에 10여 그루 묘목을 일본에서 들여와 꺾꽂이로 번식을 한 3세대 나무이다. 그 종주목이 전남대학교 치과병원 앞에 서 있다.
세콰이아는 북미 원산으로 체르키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인디언어를 만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세콰이아는 ‘상록 세콰이아’와 낙엽수 ‘메타 세콰이아’, ‘자이언트 세콰이아’ 세 종류가 있다. 세콰이아는 중생대 때 초식 공룡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키가 커졌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자이언트 세콰이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로 100m 이상의 키에 3000년 이상 된 고목도 있다.
세콰이아 서식지에는 산불이 나서 씨앗이 발아해야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다. 산불에 강한 세콰이아는 솔방울이 두껍고 딱딱한 껍질 속에 수분을 보관하고 있어 200℃가 되어야 솔방울이 터져 씨앗으로 번식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산불을 내기도 한다.
메타 세콰이아가 ‘씨’로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산불 같은 모험을 겪어야 하듯이, 그녀도 대를 잇기 위해서 내로남불 같은 로맨스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는 문자가 왔다.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메타 세콰이아 가로수길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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