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및 평론

꼬꼬마

김 한 호 2023. 1. 31. 19:49

꼬꼬마

 

김 한 호

 

하늬바람 부는 계절이면 연을 날리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나의 소년 시절의 소담한 꿈을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연날리기를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면 감나무에 매달아 두었던 가오리연을 가지고 빈 들판 바람받이 언덕에서 동무들과 함께 연을 날렸다. 동무들 중에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방패연과 네 발 달린 얼레를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고샅을 나섰지만 나는 형과 함께 만든 긴 갈개발이 달린 가오리연을 보듬고 조심스레 도랑을 건너 언덕으로 갔다.

 

동무의 방패연은 연싸움을 하기 위해 연줄이 낚시에 쓰는 주낙줄에다 유릿가루를 부레풀에 섞어 개미를 먹인 날카로운 실인데, 내 연줄은 어머니가 손수 물레를 자아서 만든 무명실이다. 어쩌다 연줄이 끊겨 연실을 잃어버릴 때면 반짇고리에서 솜이불을 깁으려고 정갈스럽게 마련해 둔 실타래를 몰래 가져다 쓰곤 했다. 그것도 나중에는 군데군데 끊겨 이음 자국이 생기고 끊어지기 일쑤였다.

 

동네 아이들과 연날리기가 한창일 무렵이면 하늘에는 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오리연의 긴 꼬리가 동구 밖 고목나무에 닿을 때쯤이면 방패연이 싸움을 걸어왔다. 방패연은 바람을 타고 솔개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면서 쏜살같이 가오리연에 달려들었다. 나는 연줄을 서리서리 감으면서 세차게 튀기면 방패연은 가오리연의 연줄에 휘감겨 깨끼춤을 추다가 논두렁에 곤두박질치며 고꾸라져버렸다. 나는 말똥지기가 되어 방패연을 다시 띄워주었지만 가오리연은 연줄이 끊어져 동구 밖 늙은 팽나무에 벌이줄이 걸린 채 바람개비처럼 맴돌고 있었다.

 

연 싸움을 하지 않는 날은 연을 멀리 날리는 시합을 했다. 가오리연은 꼬리가 길어야 연 날리는 재미가 있다. 연줄이 신명나게 풀려나가고 뱀 꼬리 같은 긴 갈개발이 하늘 높이 나풀거릴 때면 가오리연은 하늘에 무리지어 날아가는 서리까마귀보다 더 높이 날았다.

 

가오리연은 줄을 당겼다 풀었다 반복하면서 재주를 부리면 춤추듯 깬지치기를 했다. 연은 바람이 드세게 불 때 연줄을 풀어주면 멀리까지 날아가다가 보리밭에 닿을 듯 말 듯 할 때에 연줄을 위로 잡아채면서 당기면 물결을 거슬러 오르듯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떠올랐다. 방패연은 여유롭게 하늘에 떠있지만 가오리연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촐랑대는 꼴이 마치 탈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연날리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이면 하늘 멀리 떠 있는 연에 꼬꼬마 편지 보내기를 했다. 우리들의 사연을 적은 종이쪽지를 가운데 구멍을 뚫어 연실에 매달아 날려 보냈다. 어린 시절 순수하고 풋풋한 꿈을 하늘에 실어 보냈던 것이다.

 

저녁노을이 붉게 서산마루에 걸리고 빈 들판에 땅거미가 깔려 올 무렵이면, 보금자리를 찾아드는 텃새들처럼 하나 둘씩 연줄을 감기 시작했다. 까까머리 얼굴에는 땟국물이 얼룩지고 검정 고무신에는 흙이 가득 차 있었지만 연날리기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빛바래지 않은 순진무구한 꿈을 전해주고 싶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아이들이 되지 않고, 대자연 속에서 호연지기의 꿈을 키우며 자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옛 선인들이 그러했듯이 전통적인 세시풍속과 미풍양속인 연날리기를 가르쳐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난했지만 소중했던 소년 시절의 꿈을 전해주고 싶다.

 

'수필 및 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나무와 떨겨>  (3) 2023.01.31
메타 세콰이아 여인  (0) 2023.01.31
마음의 빛깔  (1) 2023.01.30
영혼처럼 빛나는 별  (0) 2022.09.04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0) 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