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2024. 9.26(목) 연재
전설의 섬 산토리니를 찾아서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그리스 산토리니를 한국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섬이라고 한다. 산토리니는 플라톤(BC 427~347)의 ‘아틀란티스’에 나오는 이상향으로 전설의 섬이다. 그런데 에게해에는 산토리니 섬이 실제로 있다. 지난봄에 그리스와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우리 부부와 일행은 바다를 건너 신비의 섬을 찾아갔다.
유럽 문명의 원류이며 미노아 문명의 발생지인 그리스에는 6천여 개의 섬이 있다. 산토리니 섬은 에게해 남쪽에 있으며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인 크레타 섬 위쪽에 있다. 산토리니 섬은 기원전 17세기경에 역사상 가장 큰 화산 폭발로 섬의 대부분이 바다에 가라앉고 일부가 남은 섬에는 유적이 남아 있다.
1967년에 그리스 고고학자들은 산토리니 섬에서 청동기시대 유물과 전설적인 아틀란티스 유적을 발견하여 초기 그리스 문명이 존재했음을 밝혀냈다. 유물 중에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와 토기 항아리, 대리석 조각상, 황금 염소, 파피루스로 만든 종교 문서 등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화산 폭발로 사라진 산토리니 섬의 고대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사라진 산토리니 섬의 전설을 조상들로부터 전해 듣고 상상력으로 아틀란티스를 창작했다. 그가 아틀란티스에서 추구한 이상국가는 인간의 평등과 사유재산을 폐지한 계급사회로 일종의 디스토피아였다.
예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서기 79년에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로마의 고대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로 덮여 폐허가 된 유적지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산토리니 섬은 수천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전설로 전해졌던 것이리라.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일부가 남은 산토리니 섬은 동화의 나라 같았다. 아름다운 바다와 하얀 집들과 파란 지붕의 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경이로운 풍경으로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서 1만 5천 명의 주민이 사는 섬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방문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에게해의 맑고 푸른 바다를 건너 산토리니 섬엘 갈 수 있었다. 항구에서 보니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 능선에 있는 하얀 집들이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관광버스가 산비탈을 따라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올라갈 때는 천 길 낭떠러지 바다에 떨어질까 봐 심장이 떨렸다.
산토리니 섬은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던 하얀 집들도 가까이 다가가보면 산동네 초라한 집이다. 비탈진 좁은 골목길은 손수레를 끌고 다닐 수 없어 당나귀가 짐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리스는 IMF 구제금융을 여러 번 받아 가난한 산토리니 사람들에게서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산토리니 섬에 사는 토착민들은 화산재의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상들이 그랬듯이 아틀란티스 전설을 대대로 이어가며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비탈밭에 포도나무가 거친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포도 줄기를 둥그렇게 감아올려 땅딸막하게 키우고 있었다.
그리스 여행을 하면서 파르테논 신전과 아폴론 신전, 고대 올림픽 경기장을 보고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에 감탄했다. 그러나 번영을 누리던 고대 그리스가 몰락하고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화산 폭발로 사라진 고대 도시 산토리니의 유구한 역사가 전설로 남아 있어 허허롭기만 했다.
'전남매일신문 - 김한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뜨락 (2) | 2024.11.28 |
---|---|
아파트에서 우는 까치 (0) | 2024.11.02 |
김을 먹으며 (15) | 2024.07.19 |
메타세콰이아 여인 (0) | 2023.05.07 |
어떻게 사는가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