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2016년 9월 3일(목)
쑥독새 닮은 청춘들
김 한 호
문학박사·수필가·문학평론가
지구에 사는 모든 동식물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진화한다. 육지에 사는 포유류 중 일부는 먹이가 없는 겨울에는 동면을 하며 생존한다. 그래서 먹이를 구하기 힘든 북아메리카에 사는 불곰, 땅다람쥐, 여우원숭이 등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얼지 않는 굴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조류 중에는 유일하게 ‘북미 쑥독새’만이 동면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한편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철새들은 생존에 유리하고 좋은 먹이와 번식을 위해 계절이 바뀌면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날아간다.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태평양을 건너 열흘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뉴질랜드까지 1만 2000km를 날아간다. 또한 북극에서 남극으로 왕복 8만km를 매년 오가는 북극제비갈매기는 평생 200만 km 이상을 날아간다. 이는 지구에서 달까지 38만km 먼 거리를 두 번 이상 왕복하고도 남는 머나먼 여정이다.
이 세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더욱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존은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영국 과학 작가인 알렉스 라일리가 쓴 ‘극한 생존’을 읽으면서, 0.5mm에 불과한 완보동물이 산소, 물, 먹이조차 없는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에 비해 우리 인간은 너무도 안이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물곰 또는 곰벌레라고 불리는 완보동물은 이끼 등에서 발견되며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미세한 동물이다. 이 동물은 영하 273℃의 혹한이나 펄펄 끓는 열기, 방사선,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살아남는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생명을 끝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하찮은 동물일지라도 생명력은 끈질기다.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비록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인간을 제외하고 그 어떤 생명체도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청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더욱이 한국은 23년 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할 청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사회와 단절하는 비극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러한 비극은 날로 치열해지는 무한 경쟁과 좁아진 취업문이라는 사회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 좁은 문을 뚫기 위해 수년간 낙방을 거듭한 청년들은 ‘나는 이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무력감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는 청년 개인의 의지 문제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국가나 사회의 무능이 불러온 결과이다.
이처럼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적 불안정은 심리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들은 집안에 머무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만다. 취업은 물론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한 청년 백수가 무려 260만 명에 이른다는 현실은 청년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가 겪는 심각한 문제다.
이들 청춘의 모습은 마치 ‘북미 쑥독새(커먼 푸어윌)’와 닮았다. 이 새는 북아메리카에 사는 작은 야행성 새로 1만여 종의 조류 중에서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새다. 쑥독새는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풍부한 먹이를 찾아 날아가지 않고, 체온을 떨어뜨린 채 단식을 하며 바위틈에 몸을 파묻고 동면을 한다. 혼수상태에서 겨울잠을 자는 쑥독새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더 좋은 생존 환경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바위틈에 숨어 겨울을 견디는 쑥독새처럼, 우리 청년들도 혹독한 사회적 겨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둔이라는 동면을 선택한 것이리라. 쑥독새 닮은 청춘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스스로 삶의 문을 닫아버린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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