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학적 변용
김 한 호
문학은 언어로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예술이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일상의 삶에서 남과 다른 안목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여 개성적인 삶의 모습을 상상을 통해 형상화하여 작품으로 창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필가들은 상상이나 형상화 과정 없이 생활 속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여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서 수필을 신변잡기라고 하여 신춘문예나 문학상 등에서 제외되는 문학의 서자 취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까닭은 수필이 현대문학 초창기에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여유롭게 쓰는 잡문으로 ‘붓 가는 대로 쓰는 무형식의 글’이라는 잘못된 이론으로 인해 수필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90년대부터 문예지가 많이 창간되자 문학이론 공부나 습작기 과정도 없이 등단하는 수필가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수필가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되었다. 게다가 수필에 대한 전문 이론가나 평론가들이 수필 문학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필이 신변잡기가 아닌 문학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상상과 형상화를 통한 문학적 변용으로 수필의 질적 향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모색해보고자 한다.
1. 생활수필과 문학수필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문자로 기록되거나 책으로 인쇄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에는 정서, 사상, 상상, 형식 등의 구성 요소가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필은 시, 소설, 희곡, 평론과 함께 문학의 5대 장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다른 장르는 일정한 형식과 구성 요소 등이 있지만 수필은 형식이나 구성 요소 등에 대한 명확한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시, 소설, 희곡, 평론을 제외한 그 외의 문학적인 글들을 모두 수필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수필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필은 경수필(미셀러니)과 중수필(에세이)로 나눌 수 있다. 중수필은 “지적이며 논리적인 글”로 칼럼, 서평, 에세이(소논문) 등이 이에 속한다. 현재 한국에서 수필을 쓰는 대부분의 수필가들은 중수필보다는 경수필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수필이라고 하면 경수필을 일컫는다.
경수필은 “개인적인 정감과 체험을 표현한 주관적인 글”로 감상문, 기행문, 일기, 편지, 자서전, 회고록, 인물평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경수필은 여러 가지 형식을 가진 글들이기 때문에 형식이 자유로우며, 구성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그래서 시, 소설, 희곡, 평론과 같은 창작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즉 비형식적인 수필은 소설의 서사적인 기법, 시의 운율이나 수사법, 희곡의 대화체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필 작법이 자유로워 다양한 창작 이론과 실험 수필이 시도되고 있다.
그렇지만 수필은 중수필과 경수필로 나뉘며, 경수필은 생활수필과 문학수필로 나눌 수 있다. 생활수필은 “사실적 체험만을 기록한 글로서 생활 속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사실적인 기록물”이다. 반면에 문학수필은 “문학성이 있는 수필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조 행위가 언어를 통해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글”이다.
생활수필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신변잡기와 감상문, 기행문, 일기, 편지, 자서전, 회고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체로 이러한 글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쓰기 때문에 문학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수필이라고 문예지에 발표되고 있는 신변잡기는 생활수필로 문학적 표현 기법이나 문학성이 결여되어 수필의 질적 저하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수필의 3요소인 ‘주제’, ‘문장’, ‘인간미’를 잘 갖추고 있으며, 짜임새 있는 구성과 문학성이 돋보이는 수필을 문학수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문학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주제가 잘 드러나고, 인간미가 드러나는, 진솔한 문장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문학 작품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한 형상화 과정을 거친 표현 기법이 뛰어난 창작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좋은 문학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된 수필이어야 한다. 그래서 수필을 가리켜 가장 어려우면서도 쉽게 느껴지는 글이라고 한다.
2. 수필의 문학적 변용
가. 허구와 상상
수필은 작가가 체험을 통해 느끼고 깨달은 삶의 지혜를 독자와 공유하는 자기 고백의 문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필이 다른 문학과 다른 점은 ‘허구’가 아닌 작가의 진실된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나 허구는 ‘꾸며낸 이야기’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얼마든지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수필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자신의 사실적 체험인 양 꾸며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수필은 작가의 인격적 고백으로 한 편의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허구(虛構, fiction)는 “실제로 없는 일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꾸며낸 이야기”이다. 수필에 허구를 수용하자는 이론에 따라 ‘팩션 수필’이 등장하고 있다. 팩션(faction)은 ‘사실적 허구로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합쳐진 말’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말한다. ‘실화소설’을 팩션이라고 하며, 역사 영화, TV 역사 드라마가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팩션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 허구인 ‘콩트’이다.
문학은 ‘상상(想像, imagination)의 세계’로 ‘내용’, ‘형식’,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상상이란 “체험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문학 작품의 내용은 장르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현실로서의 인간의 삶’과 ‘상상한 인간의 삶의 세계’로 나눌 수 있다. 수필은 ‘현실로서의 인간의 삶’이다. 수필에 있어서 ‘인간의 삶’이란 허구가 아닌 작가의 사실적 체험을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 상상의 폭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사실이나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수필을 가리켜 ‘자전적 문학’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문학은 상상에 의한 허구의 세계이지만 수필은 현실적으로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비허구적인 문학이다. 수필은 사실을 기준으로 상상력을 통해 경험(직접경험, 간접경험)을 재구성하여 작품을 창조한다. 수필은 처음부터 허구로 창작하지 않을 뿐이지 작가의 기억에 의존한 상상이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 작품화할 때, 그것을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기억이라는 상상을 통해 유추해 낼 수밖에 없다.
수필은 사실적 체험만을 그렸느냐, 아니면 사실적 체험에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었느냐에 따라 수필의 문학성이 달라진다. 문학에 있어서 창작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만큼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에 따라 작가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거나 대상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허구가 아닌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다 자유롭고 흥미롭게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나. 문학적 변용과 형상화
문학적 변용이란 “문학적 발상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활용하여 객관적 사물을 자신의 주관에 맞게 변형시켜 형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 형상화란 “감정, 정서, 관념, 사물 등을 언어로써 실감 있게 바꾸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잘 짜여진 언어적 구조와 세련된 표현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수필을 쓰는 것은 과거의 질서 없는 체험의 세계를 현재의 의식화된 상상력을 통해 질서화된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적 창조 행위이다. 즉 과거에 기억된 질서 없는 체험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직접경험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세계에 펼쳐지는 상상 내지 사유까지 포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러한 체험을 문학적 표현 기법을 활용하여 수필이라는 하나의 구조로 변용시켜야 한다.
수필은 작가의 삶이 다양하듯이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 또한 다양하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수필 작품을 통하여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작가의 삶, 낯선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남다른 체험과 참신한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작품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더 깊이 있게 이해하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글, 세련된 글을 읽으면 강한 인상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 글에서 뛰어난 문장력, 풍부한 지식과 경험, 다양한 구성 능력, 개성적인 주제를 탁월한 표현 기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형상화 과정과 세련된 문학적 표현이 필요하다. 따라서 수필 창작을 위해서는 참신한 소재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뛰어난 문장력으로, 개성적인 주제 구현을 위한, 문학적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가는 독자 수용론적 관점에서 수필을 창작해야 한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고, 일부 수필가들 중에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자전적인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수필은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글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글이다.
더구나 디지털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문자문화시대의 종이책보다 전자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같이 문자와 영상물로 편집된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현실감이 있어 종이책의 독서를 현저히 저하시키면서 종이책의 쇠퇴와 더불어 문학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도 수필가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도외시한 채, 자기 취향에 따라 신변잡기 수필을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개성적인 주제로 상상과 형상화를 통한 문학적 변용과 세련된 표현 기법을 통해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좋은 수필을 창작해야 할 것이다.
<약력>
ㆍ『한국수필』(1994) 수필, 『문학춘추』(2001) 평론 등단
ㆍ 문학박사, 전 고등학교 교장(홍조근정훈장)
ㆍ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ㆍ 저서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2018, 범우사) 외 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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