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도시에서 죽다
김 한 호
(문학박사ㆍ문학평론가)
도시에 가로수와 조경수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동차 매연과 오염으로 나무들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리 소홀과 각종 공사로 뿌리가 잘리고, 가지치기로 상처받은 나무들이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올 가을에는 가로수들이 단풍도 들기 전에 공해로 오염된 이파리들이 떨어져 바람에 뒹굴고 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도로변에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많이 있었다. 봄이면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로수길이 좋아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가로수길을 걸어가며 은행나무들과 말 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들을 가지치기를 해버렸다. 가지치기는 잎이 진 가을이나 봄에 해야 하는데, 한창 성장하는 굵은 생가지를 잘라버린 것이다. 팔 다리가 잘린 듯 흉물스럽기도 했지만 찢어진 생채기가 너무 커서 도저히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광주시 북구청 담당자와 통화를 하여 절단된 부위에 황토 소독과 마포로 감싸주도록 부탁했다.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도로 양편에 줄줄이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잘린 줄기마다 환자처럼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해에는 은행나무 밑을 파헤치고 보도블록을 깔면서 뿌리를 마구 잘라버렸다. 또 간판을 가린다고 가지를 쳐냈다. 동물이라면 살기 어려운 이 도시를 진작 떠났을 것이다. 식물이라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지만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식물도 자기들끼리 소통을 한다고 한다. 벌레가 잎을 갉아 먹으면 옆에 있는 나무에게 신호를 보내 미리 벌레가 싫어하는 화학물질을 뿜어낸다. 큰 어미나무는 뿌리에서 자라는 새끼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무에게 타감작용을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식물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 식물이 없으면 인간과 동물이 숨 쉴 수 있는 산소와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제공받을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는 ‘전국 우수 그린마을’로 선정된 아파트인데, 30년 가량 된 느릅나무가 40여 그루 있었다. 그런데 주차 차량에 수액이 떨어지고, 가을철에 낙엽 때문에 성가시다고 아파트 자치위원회에서 베어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환경단체에 전화하고, 신문에 보도하여 자르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도 공사를 하면서 느릅나무와 느티나무를 몇 그루 베어버리고, 높이 자란 메타세콰이어가 아파트에 위험하다고 잘라버렸다. 아파트를 지을 때 식재한 나무들이 그동안 시나브로 사라지고 만 셈이다.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자란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나무가 주는 이로움을 어리석은 인간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러께 학동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새 아파트는 조경 상을 받을 만큼 수목 관리가 잘 되어 쾌적했다. 게다가 아파트 앞에는 광주천이 흐르고, 운치 있는 수양버들과 왕버들이 자생하고 있어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래서 산책도 하고 운동 시설이 있어 운동도 한다.
그런데 봄철이면 동구청에서는 버드나무에서 나오는 인체에 피해가 없는 솜털 같은 씨앗인데도, 꽃가루가 날린다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지치기를 했다. 하천 건너 남구에서는 가지치기를 잘하여 나무들이 아름답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동구청에서는 가지치기를 심하게 하여 1.5㎞에 걸쳐 80여 그루의 나무를 몽둥이처럼 볼썽사납게 만들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옛 사람들은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믿어 나무를 함부로 자르면 동티가 난다고 했다. 나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나무를 마구 잘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광주는 공원과 숲이 적고, 자동차가 많아 공해와 미세먼지가 많은 도시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많이 타고 다니면서 나무를 죽이는 것은 쾌적한 환경과 자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를 죽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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