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때리기
김 한 호
어두운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때리기를 함께 했다. 불멍은 ‘불을 보며 멍때린다’는 준말로 불타는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것이다. 친구는 불 같은 성질을 고치기 위해 장작불을 태우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아무 잡념 없이 쳐다보며 멍때리기를 한다고 했다.
불멍때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불타던 장작이 무너지면서 불똥이 내 쪽으로 튀겼다. 시뻘건 잉걸불을 보자 어린 시절 산불이 나서 놀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언덕배기에서 동무들과 쥐불놀이를 하는데 들불이 번져 산자락에 옮겨 붙었다. 대낮에 불은 연기도 없이 마른 검불을 태우며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녔다. 불길이 산지기 초가집에 다가가자 불을 보고 놀란 산지기가 허겁지겁 물을 뿌리며 불을 껐다.
산지기는 불 같이 화를 냈다. 산불에 놀란 우리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가 다가오더니 욕을 하고 뺨을 때리며 발로 찼다. 우리들은 그을음으로 얼룩진 얼굴을 눈물로 닦았다. 잿빛 들녘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화재를 보면 무섭다.
원시 인류는 자연에서 저절로 발생한 불을 발견했을 것이다. 인류가 불을 이롭게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켰다. 생식을 하다 음식을 익혀 먹고, 불을 밝혀 밤을 활용하고, 추운 지역으로 이동했다. 또한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한 판도라가 상자를 잘못 열어 악과 병이 나와 인간들에게 떠돌아다녔지만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었다.
불멍때리기를 하는 친구는 화가 나면 성질이 불 같았다. 벼락불 같이 화를 내며 횃불처럼 타올라 주위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며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화를 낸다. 그래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나도 가끔 화를 낼 때가 있어 불멍때리기를 함께 했던 것이다.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 있고, 물 같은 사람도 있다.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하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들은 성격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불 같은 사람과 다투어 불쏘시개가 되지 말고, 불씨가 사위도록 달래며 불티가 옮겨 붙지 않도록 불깃을 놓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있는 것으로 마음 밖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인격이 수양되지 못한 감정의 표출로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 참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듯이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미리 생각하는 자)의 예지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에피메테우스(뒤늦게 생각하는 자)의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불 같이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하며 반성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와 함께 판도라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을 바라며 성찰하는 마음으로 불멍때리기를 했던 것이다.
약력
*<한국수필>(1994) 수필, <문학춘추>(2001) 평론 등단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 《하늘 메아리》외 10권, 《21세기 학교교육 희망을 말하다》(공저) 2021. 세종도서 학술부문 최우수도서 *세종문학상, 수필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전남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광주문학상, 올해의 작품상, 아시아서석문학 대상, 한민족문화예술대전 대상(서울특별시장상)
'수필 및 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 개구리 소리 (1) | 2024.08.29 |
---|---|
사랑하는 마음 (3) | 2024.06.05 |
나의 대표작을 말한다 (0) | 2024.04.17 |
사랑과 전쟁 (0) | 2024.04.10 |
부자가 아니더라도 (1) | 2024.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