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2024년 12월 26일(목)
세금이 무서워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또 세금 고지서가 날라 왔다. 1년 동안 내가 내는 세금이 몇 종류이며 얼마를 내며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세금을 내고 있다. 퇴직 전에는 공무원은 유리 봉투라서 월급을 받은 만큼 세금을 냈다. 그러나 지금은 수입도 변변찮은데 무슨 세금이 그리 많고 세제가 복잡한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세금은 25가지로 조세 부담률은 24%이다. 그런데 국가 채무가 역대 최고치인 1145조 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50% 수준으로 재정 위기이다. 그런데도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5744억 원을 낭비하고, 새만금 잼보리대회에 1171억 원을 사용했다. 이렇게 잘못 사용한 예산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현재 국가 채무와 가계 빚이 무려 3042조 원이나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보다 살기 어려운 옛날에는 탐관오리의 횡포가 심해 백성들이 세금을 무서워하던 시대가 있었다. 중국의 「예기」에 나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와 조선시대 ‘애절양(哀絶陽)’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노나라 백성들이 위정자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태산 기슭을 지나가고 있는데 여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발길을 멈추고 사연을 알아보았더니, 수년 전에 시아버지가 호환을 당했고, 작년에는 남편이,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혀 먹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하자. “여기에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조선시대 정약용(1762~1836)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무렵 갈대밭에 사는 한 백성이 가혹한 세금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는 ‘애절양’이란 한시가 있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도 구슬퍼라 / 관청문 향해 곡을 하고 하늘 향해 울부짖네 / 남편 출정 나가 돌아오지 않음은 있음직도 하지마는 / 예로부터 남자가 스스로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보지 못했네 / 시아버지 돌아가셔 상복을 입었고, 갓난아이 아직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다네요 / 억울한 사정 호소하려고 해도 범 같은 문지기 막아서 있고 / 이정은 호통치며 마구간에서 소마저 끌고 갔지요.
‘애절양’처럼 세금을 낼 처지마저 되지 않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은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1894년 동학혁명은 고부 군수 조병갑이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하자 농민들이 반발하여 일어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가 장기간 전쟁과 왕비 앙트와네트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부채가 급증하여 국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각종 세금을 많이 거둬갔지만 국가발전이나 국민복지 향상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국가 부채는 늘어만 가는데 부자들은 탈세를 하고 서민들은 과중한 세금이 무서운 시대가 돼버렸다. 따라서 국민의 4대 의무인 납세 의무에 대한 불신이 없도록 세금을 징수해야 하고,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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