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문 - 김한호 에세이

해녀들의 숨비소리

김 한 호 2025. 1. 23. 19:14

전남매일신문2025123()

 

 

해녀들의 숨비소리

 

김 한 호

문학박사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

 

제주 올레길을 걷고 싶고,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듣고 싶어 제주도를 찾아갔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잠수한 후, 물 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해녀들은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제주 바다에서 돌변하는 날씨와 거친 풍랑 속에서 힘겹게 물질을 한다. 더욱이 바다 속에는 청상아리나 전기가오리, 독가시를 가진 물고기들이 있어 위험하다. 하여 바다의 물결소리와 어우러져 들려오는 숨비소리는 해녀들의 애처러운 숨결소리 같다.

 

그런데 바람 부는 추운 겨울바다에 자맥질하는 해녀들은 보이지 않고 불턱만 을씨년스럽게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때 준비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을 하는 장소다. 해녀들은 연령과 물질 기량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불턱에서도 위계질서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해녀들의 삶의 터전은 바다밭이다.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는 혼자서 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목숨을 담보로 처절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해녀들은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처럼 저승 같은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여 이승에서 생계를 꾸려간다.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입는 물옷은 물적삼(상의)과 물소중이(하의), 머리에 쓰는 물수건이 있다. 물질에 사용하는 도구로는 물안경, 태왁, 망사리, 빗창, 까구리 등이 있다. ‘태왁은 바다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물 위로 나와 숨을 쉬기 위한 도구이다. 원래 박으로 만들었으나 1970년대부터 스티로폼으로 제작하고, 고무옷인 잠수복이 나오면서 장시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는 여자, , 바람의 삼다도(三多島)이다. 그리고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존지역’,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보물섬이다. 게다가 제주 해녀들은 국가무형문화유산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그래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제주도에는 중국, 동남아를 비롯하여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예전에 나도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를 구경하고, 해녀들이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해삼, 전복, 성게를 바닷가에서 사 먹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결혼 45주년 기념으로 제주도를 찾아갔다. 10여 년 만에 제주도에 갔더니 제주도의 풍광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낯선 아열대 나라에 온 듯 겨울인데도 늘푸른 야자수와 노랗게 익은 감귤과 철 이른 동백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제주도는 지상낙원이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돌담으로 쌓은 울타리와 한라산 기슭의 띠를 말려 지붕을 덮고,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띠줄로 동여맨 초가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지에는 새로 지은 초가가 있었으나 제주의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신혼부부가 정낭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영어로 묻길래, “제주도에서는 대문을 정낭이라고 하는데, 정낭이 놓여 있는 상태에 따라 집 주인의 외출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서툰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제주도의 상징물로는 화산석으로 만든 돌하르방이 있다. 그리고 물허벅을 지고 지세항아리에 물을 붓는 여인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녀들이 늙어가고, 물질을 하려는 젊은 여자들이 적어서일까? 태왁과 망사리를 어깨에 멘 해녀의 조각상마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안가 올레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이어도가 있다는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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